안개의 메모 #1 새벽의 칼날 (장편소설,범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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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8 20:05조회 30댓글 5한지우
#1 새벽의 칼날
-By 한지우


긴 복도를 스치는 형광등의 깜빡임이
발소리와 어우러져 리듬을 이룬다.
한 손에는 노란 장갑이 끼워진 채, 이 형사는 흐린 창문 너머로 거짓말처럼 고요한 안개를 바라본다.
안개 속에는 붉은 빛이 숨죽여 번지다가, 이내 바닥에 덮인 시신 위로 흘러내린다.
형광등 아래,
시체는 어둠의 틈새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목의 상처는 정확히 한 번 찔린 듯 매끈하고 예리하다.
피는 한 모금도 남지 않아 마른 종이처럼 바스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계획했겠지.”
이형사는 속삭이듯 중얼거리며 형사증을 벗어 현장 게시판 옆에 붙인다.
살인범은 이미 수차례 장면을 연출해본 배우 같다.
단서 하나하나가 무대 장치처럼 놓여 있다.
허공을 스치는 서늘한 냉기 속에서, 이형사의 시선이 작은 메모지에 머문다.
‘세상은 언제나 빛을 따라간다.’
잉크가 번져 해독이 쉽지 않은 글귀는 오히려 이형사의 심장을 빨리 뛰게 만들었다.
경찰차 사이로 새벽 공기가 스며들고, 쓰러진 의자 하나가 비틀린 각도로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왜 여기에서 멈췄을까.”
고요 속에서 울리는 회상의 파편만이 그 답을 알고 있는 양, 멀리서 사이렌이 다가온다.
이형사는 멈춰 선 채 주머니 속 작은 카메라를 들어 올린다.
현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선 위에서, 그는 이미 다음 행보를 계획하고 있었다.
피 한 방울 남기지 않은 살인자는 누군가의 어두운 욕망을 비춘 렌즈일 뿐이다.

-By 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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