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31 23:17•조회 97•댓글 22•🎀 리졜 、ᡴꪫ
—델피늄.
그 이름조차 아름다운 꽃으로부터 비극은 시작되었다.
‘이게, 이게… 뭐야?’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대중들이 델피늄이라 명명한 비극. 시작은 얼굴의 왼쪽 눈 이마, ’델피늄‘이라는 이름의 꽃이 피기 시작한다. 다음은 그 아래, 눈에 핀 꽃은 예기치 못한 독성을 내포하여 숙주를 실명시킨다. 그렇게 코, 입… 발끝까지 아주 천천히, 움직이진 않지만 강한 생명력으로, 숙주를 천천히 갉아먹으며 비극은 생장한다.
병원 응급실에 자리가 없다. 사람들이 복도까지 밀려났다. 묫자리도 납골당도 부족해 길을 가면 십자가 하나 박힌 무덤이 가득하다.
언론에선 치사율이 99.9%라면 떠들어댄다. 나라가 비상사태로 돌입됐는데도 정치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얼마 남지 않은 밥풀 싸움을 하고 있다. 의료계는 밀려오는 환자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그냥, 그냥 이 반복이었다.
… 바보같아.
아직도 밥풀 싸움을 하는 언론인을 보느니 차라리 수명이 1주일이 남았다 해도 수험공부를 하겠다—같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에이즈카 시즈쿠(益塚 静玖). … 상태는 어때?”
고개를 돌려 소파에 누워있는 체구가 작은 여자아이를 바라봤다. 157cm정도 되는 키에, 얇은 다리랑 팔, 결정적으로 누가 보아도 예쁘다고 할 수 있는 얼굴.
그러한 내 10년지기 친구도 그 비극을 피해갈 순 없었다. 예쁜 얼굴의 반이 꽃으로 뒤덮였다. 아, 주여. 이게 컨셉사진을 찍기 위한 분장이었다면 난 정말 행복했을 텐데.
시즈쿠는 말을 하지 않고 옆의 테이블을 쳤다. 이건 종이와 펜을 가져다달라는 뜻이겠지.
‘완전 팔팔해!!! 나 뛰어다닐 수 있을지도!’
안 아픈 건 좋은데 그건 너무 과했다.
에, 그런가…
어린애처럼 웃는 너를 보며 씁슬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제, 시즈쿠를 두고 혼자 병원에 갔다 와 보았다. 시즈쿠의 부모님도 같은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 지라 사실상 내가 거의 보호자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 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시즈쿠 양은… 죄송합니다만, 앞으로 살 날이 많이 남진 않았다고 보셔야 합니다.”
맙소사. 시즈쿠도 나도 아직 14살(중3)일 뿐인데 그녀는 시한부 판정이라니. 이 어떠한 기구한 운명의 장난인 것인가?
“네…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잠시 잡생각에 빠져있다 정신을 차리니 시즈쿠가 작은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것도.
커튼을 쳐서 지금이 몇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잠시 밖으로 나왔다. … 새벽 세 시?… 자야 되나…
내 방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열어 비극의 치료 방법을 찾아 보았다. 대부분 다 의학에 관한 내용이었지만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게 하나 있었다.
여우신사에서 소원을 빌면 그 사람의 어떠한 것을 가져가는 대신 그 소원이 이뤄진대.
이거, 흔한 인터넷 괴담은 아닌 거 같다. 나조차도 주변 할머니한테 그렇게 남편을 만났다는 얘기도 들었고… 물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대체 위치가 어디야?
어쩔 수 있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신사에 가서 장기를 떼어주든 뇌척수액을 바치든 해야지—
그렇게, 친구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