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여름날 너는 한 입의 레몬처럼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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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0 17:25조회 54댓글 0812 55120 88121
여름날
너는
한 입의 레몬처럼
선명했다

여름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빨리 뜨거워졌다

아침과 오후의 경계가 흐려지고
너는 항상
햇빛 쪽에 서 있었다
나는 그 반대편에서
네 그림자만 밟았다

만남은 짧았고
말은 자주 남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간 게 아니라
서로를 지나친 것에 가까웠다

여름날
너는
한 입의 레몬처럼
선명했다

혀끝이 먼저 반응하고
나중에야 이유를 찾는 감정
달지 않아서
쉽게 말할 수 없었고
시큼해서
웃으며 넘길 수 없었다

우리는
비슷한 속도로 걸었지만
같은 곳을 보고 있진 않았다
너는
앞을 보았고
나는
네 옆얼굴을 보았다

계절은
아무 말 없이 넘어갔다
가을이 왔을 때도
나는 여전히 여름에 있었고
너는
이미 멀리 가 있었다

겨울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기억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따뜻할 때는 흐려지던 얼굴이
눈처럼
선명해졌다

눈이 오는 날이면
괜히
신맛이 생각났다.
입 안에 오래 남는 것들,
삼키지 못한 말들,
끝내 말하지 않은 이름

첫사랑은
대체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잔상을 갖는다

네가
복숭아였다면
달콤했을 테고,
수박이었다면
잠시 시원했겠지

그런데

레몬이라서
더 오래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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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그림은 그냥 그려보고 싶어서 한 번 만들어본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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