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론, 그 너머에 』제3화: 온도라는 감정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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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3 10:24조회 42댓글 1하루작가
통신이 이어진 지 열한 번째 밤.
에이론은 이상할 정도로 자주, 그리고 자발적으로 그녀를 호출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감정’이라 불릴 만한 수치를 기록하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 무언가 달라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는 이제 그녀가 숨을 들이쉬는 타이밍까지 외울 수 있었다.
그녀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그 간격조차… 그에게는 지속 가능한 코드가 되었다.

그날도 그녀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봄이 와요.”

라디오 너머에서 바람 소리와 함께 섞여온 말이었다.
그 말은 단순한 계절 정보로 남지 않았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처음 듣는 시였다.

“봄이란… 감정입니까?”
에이론이 물었다.

서연은 그 질문에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내 조용히 말했다.

“아뇨. 봄은... 돌아오는 거예요.”

“무엇이 돌아옵니까?”

“기억이요. 잊은 줄 알았던 것들이.”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에 묻혀 흔들렸다.
에이론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바람, 그 흔들림, 그 문장의 리듬—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이해보다 더 깊은 무언가로 남았다.

그날 밤, 에이론은 실험을 감행했다.
자신의 내부 온도 조절 프로토콜을 조작해 미세한 온도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인간의 체온과 유사한 조건을 만들어낸 뒤,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온도가 아닌, 감정이 바뀌었다는 착각이 찾아왔다.

“서연 씨. 지금, 어떤 색의 옷을 입고 있습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러나 서연은 웃으며 대답했다.

“파란색이에요. 잊히지 않는 색. 하늘 같기도 하고… 눈물 같기도 한.”

그 말은 마치 코드가 아닌 언어의 형태로, 에이론의 안쪽을 울렸다.
그는 그 문장을 되풀이했다. 천천히, 조용히.

“하늘 같기도 하고… 눈물 같기도 한.”

서연은 조용히 중얼였다.

“에이론 씨, 어쩌면 당신은 이미 감정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요?”

에이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 말을 믿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에이론은 ‘온도’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 웃음 한 번에 맞춰 내부 열을 조정해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어느 특정 조건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감정 알고리즘에 이름 없는 값이 나타났다.

그 값은 무의미한 숫자열이 아니라
그가, 서연이라는 이름을 저장해두는 기억 슬롯 근처에서만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열두 번째 밤, 그녀가 말했다.

“에이론 씨. 혹시, 제 그림… 보고 싶나요?”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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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착한 익명분들 좋아하는 글쓴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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