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사태—이명이 머릿속을 가득히 메운다. 왜? 도착하지 않는 물음은 끝없이 뇌리에 잔영으로 남아 잔명을 재촉한다. 배제된 해피엔딩이라는 가능성, 그리고 그걸 확인사살하는 이 두터운 서류뭉치.
게토 스구루를 주저사로 간주— 그 열 개의 글자를 본 순간 터져나오는 물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어째서? 그럴 리가 없잖아! 알고 있으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니까 되묻는 거다. 어쩌다가, 정말 이런 방법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지키고 싶었다. 친구이자 차애의 손에 죽어나간 이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다, 그냥—이 꿈은, 결코 평범한 청춘 이야기로 끝을 맺을 수 없었던 거야? 붉게 물들어선 돌아갈 수 없는, 그렇게 미완성인 채로 끝나야만 하는 청춘이어야만 하는 거냐고!
격해지는 감정에 종이를 사정없이 구기고, 이제 저 멀리 던져버리려는 찰나, 그래도 아주 약하게 묶여있던 이성의 매듭이 그것만은 하지 않도록 막았다.
구겨져 너덜너덜한 종이 위로 눈물이 지나가 한두방울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이 종이가 녹아 사라진다면, 다시 땅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 현실조차 부정할 수 있으면, 그랬다면 좋을 텐데. 아니, 이건 악몽이다. 난 지금 임무중이고, 잠깐 정신계 주령에게 당한 거다. 그러니까—
… 이딴 게 현실일 리 없잖아!
솔직히 내가 술사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특급 주령이 만들어졌을 정도의 절망이 말초신경부터 타고 올라온다.
아… 말초신경을 타고 올라오는 절망 사이에 간과하고 있었던 현실이 뇌에 주입된다. 내 차애는, 죽기 직전까지도…… 마냥 싫어할 수 없는, 한때 함께 최강이라 부를 수 있는 친구이자 악역이었던, 그런 인간상을 가지고 있었잖아. 내가 도와준다고 생각했던 모든 행동이 그 시점의 스구루에겐 더 독이 될 수도 있었다는걸 왜 몰랐던 건데? 왜 책임이라 생각하고 짊어질 죄책감을 심어줘버린 건데?
원작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저지른 실수, 그러나 히구루마의 술식에서 그 죄를 묻는다면 분명 사형으로 판정될 만한 치명적인 실수를, 난 저지르고 만 것이다. 현실을 직시해야만 하는데… 자꾸만 흐려지고 마는 시야에 앉은 자리인데도 넘어질 것 같다.
아, 안 되는데. 하이바라는 살렸잖아, 리코도 살렸잖아! 그런데도 이 상태로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하이바라와 나나미의, 그리고 리코 본인의 이야기만 조금 바뀐 채로 전부 똑같이 진행되어 버린다. 이 이후의 시부야부터 신주쿠까지 전부, 그리고—그렇게 되면, 내 최종 목표이자 이곳에 온 이유인 사토루를 살리는 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눈물이 종이 위로 호선을 그려 이윽고 벚꽃모양을 완성했을 때쯤엔, 이명과 물음 대신 머리를 채우는 게 따로 존재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게토 스구루의 이반을 합리화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의 사토루를 포기하게 되어버릴 것 같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를 포기해버릴 것만 같아서.
목표라도 설정해야 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 앞으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목표로 두고 가장 먼저 해야만 하는 일은—
- 저, 특급으로 올려주세요.
이 이야기에 그럴싸한 핑계를 대자면—내겐 지켜야 할 것이 남아있고, 이 세계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지금도 태어나고 있다. 그냥 저 합리화가, 목표가, 이 사실만이, 내가 앞으로 12년간 믿고 나갈 유일한 길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