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석류를 한 입 베어문 듯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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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8 00:05조회 59댓글 1hxaiz
유난히 비가 가득 내리던 늦은 봄의 오후였다. 담주색 고옥의 처마 아래로 깔리는 빗소리가 스산한 공기 속의 정적을 깨었다. 천천히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에 손금 사이 습기가 천천히 말라가며, 눈꺼풀이 느직하게 감겼다. 다가올 여름 두 가닥을 엮어낸 듯한 산산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어댔다. 찬 비에 은은하게 섞인 투명한 공기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미지근해진 분위기에 덩달아 생각이 잔잔해지던 중, 투둑거리는 빗소리에 한 겹 감싸진 노크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문 밖의 그는 나와 본인 사이의 허공을 응시하듯 가만히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나는 찬찬히 그의 얼굴을 뜯어보며 그가 누구인지 알아채려 했지만, 짙고 긴 앞머리와 푹 눌러쓴 모자가 안면을 가리는 탓에 그의 표정조차 알아보기 어려웠다.

- 오랜만이야, 선아야.

낮은 그 특유의 목소리가 울렸다. 순간 떠오른 기억, 그에 대한 나의 시간. 묻어두었던 작은 씨앗이 괴리를 안고 일어난 모양이었다.

- 왜 대답이 없어, 나 들어가도 돼?

그의 한 마디와 동시에 담아두었던 8년의 시간이 조용히 나에게 스며들었다. 조금의 안도감과 큰 원망, 당혹감. 그리고 투명함이 내 감정을 쉽게 감추지 못하게 했다.

갖가지 질문들이 빠르게 목구멍을 돌다 사라져 버렸다. 다 잊은 과거가 다시 눈앞에 얼쩡거릴 때의 기분을 넌 알까.

나는 동요하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떨리는 숨결마저 도로 잡아두고 그를 향해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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