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화수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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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3 22:16조회 75댓글 5유하계
달라지는 건 없을거라고? 과연 그럴까, 우리의 마지막은 결국 이대로 끝나는걸까. 몇백번을 몇천번을 울부짖어도 너는 돌아오지 않는데 나는 아직도 너를 부르고 있어. 목 언저리에 맺힌 네 이름을 불러도 불러도 네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워서 또 네 이름을 불러.

해야, 해야- 그렇게 읊조리다 쓰러지기라도 한걸까, 눈을 뜨니 방 안이였다. 어두웠던 방은 환해졌다. 햇빛이 들어오는 텁텁하고도 습한 방 안에서 나는 눈물 자국 탓에 짭짤해진 입가를 닦았다.

바로 앞에 네가 보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바로 코 앞에 있는 고운 해의 얼굴이. 해는 웃고 있었다. 바람 선선한 어느 날 밤 놀이터에서 다 녹아 끈적이는 아이스크림을 물고 사랑을 고백했던 그 날처럼, 추운 겨울 날 건조해 입술을 뜯다 피가 난 나를 보고 입술을 뜯지 말라는 의미로 입맞춤을 해주던 그 날처럼. 환히 웃는 해에게 다가가고 싶어 손을 뻗었다. 물론, 닿지 않았다.

해는 여전히 웃었다.

미소짓는 해의 얼굴은 왜인지 서글퍼보였다. 그 뜨겁고 후텁지근한 해의 자취방에서 보았던 해였다. 그 날 해는 새벽 달빛에 비쳐 빛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는 내게 말했다.

“우리가 만약에, 다른 세계에서 다시 만난대도. 40세기의 여름에 만난다해도.”

나는 해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알고 있었다. 듣고 싶지 않아 귀를 막으려는데 눈물이 먼저 앞길을 막았다. 해의 말이 나오기도 전 내 눈물이 먼저 나온 것이였다. 해는 내 눈물에도 놀라지 않았다. 그 매정함이 무서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보니 해의 손을 붙잡고 매달려 엉엉 울고 있었다. 해는 내 손을 잡고 말을 이었다.

“달라지는 건 없을거야.”

그랬던 해가 내 눈 앞에 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너는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질 않고, 아무리 불러도 답을 하지 않았다. 그 날의 해는 그저 나를 보며 웃을 뿐이였다. 너를 보내줄 자신이 없어 계속해서 앞으로 기어갔다. 몸을 일으킬 새도 없이 무릎을 꿇은채로 질질 다리를 끌고는, 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해에게 닿을 수 없다는 걸 눈치챘다.

이 무한한 허상 속에서 너에게 닿기란 불가능한거구나. 그야말로 경화수월이였다. 거울 속 있는 꽃이라한들, 거울이 깨지면 꽃도 사라지기에. 나는 더 이상 해에게 가지 않았다. 그저 한발자국 뒤에서, 영원히 해를 사랑했다. 41세기의 여름을 기다리며 해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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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화수월: 거울에 비친 꽃과 물에 비친 달이라는 뜻으로, 눈으로 볼 수 있으나 잡을 수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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