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진 것이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넘치는 고민과 텅 빈 지갑뿐이었다. 미래는 안개 속이었고 매일의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가장 능력 없고 초라한 시절. 나의 어깨는 세상의 짐조차 감당하기 버거웠다.
모든 것이 막막한 그 지독한 어둠 속에서 나는 그녀를 만났다. 빛이었다. 그녀는 내게 따스한 햇살이었고 길을 밝히는 등대였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여인이라면 평생을 걸고 지켜주고 싶다고.
내 모든 것을 바쳐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사랑은 물 밀듯이 밀려왔고 나는 기꺼이 그 사랑에 잠겼다. 그녀는 나의 초라함을 비웃지 않았다. 불안한 나의 눈빛을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었다. 그녀의 미소는 모든 걱정을 녹여주는 듯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 어떤 순간보다 뜨겁고 절실하게. 그녀의 작은 손을 잡을 때면 내 세상 전체를 품에 안은 듯했다. 모든 것을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벅찬 감격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사랑은 가슴을 채웠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해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그녀의 작은 소망마저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낡고 좁은 방에서 함께 라면을 나누어 먹는 그녀의 웃음은 아름다웠지만 내 속은 문드러졌다.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었다.
비바람 막아줄 단단한 지붕을 주고 싶었다. 따뜻한 옷 한 벌 사주고 싶었다. 그 무엇도 해주지 못하는 초라한 내 자신에게 분노했다.
밤마다 나는 홀로 침대에 누워 그녀의 잠든 얼굴을 바라봤다. 그 맑고 깨끗한 얼굴 위로 드리워질 수많은 고난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이대로라면 그녀마저 나와 함께 시들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은 끝없는 사랑뿐. 그 사랑으로 그녀를 지켜줄 수 없는 무력함에 치가 떨렸다. 나보다 더 좋은 것을 받아 마땅한데. 내가 왜 이토록 무능한 순간에 그녀를 만났을까. 원망은 결국 나 자신을 향했다.
시간은 무심히 흘렀다.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톱니바퀴에 낀 작은 돌멩이처럼 나는 혼자 힘겨웠다. 그녀는 늘 내 곁을 지켰다. 흔들림 없이 나를 믿어주었다. 그 믿음이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내가 아닌, 내가 꿈꾸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강인하고 능력 있고 그녀를 세상의 모든 풍파에서 지켜줄 수 있는 그런 나를. 하지만 현실의 나는 매일 깨어지고 부서졌다.
아쉬움은 슬픔이 되어 내 가슴에 박혔다. 평생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단 한 사람. 하필이면 가장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시절에 그녀를 만났다. 이 마음이 너무 커서 고통스러웠다. 내 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기에. 만약 다른 시간이었다면.
그녀가 나를 스쳐 지나간 다른 시간이었다면. 혹은 내가 좀 더 성숙하고 단단해진 후에 그녀를 만났다면. 나는 그녀에게 더 나은 세상 더 큰 행복을 선물할 수 있었을 텐데.
어긋난 시간. 엇갈린 인연. 나는 이 아쉬움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 것이다. 그녀를 향한 사랑은 바래지 않을 테지만 이 끝없는 후회는 영원히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가장 초라한 나를 사랑해준 그대.
가장 빛나야 할 그대를 지켜주지 못하는 나.
ㅡ
✒ || 익애 || 초라할 때 만난 평생을 지켜줄 사람
✒
https://curious.quizby.me/K2p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