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19분경 사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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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0 15:12조회 62댓글 2@UX2mau
유난히 하늘이 맑았다.
마치 네가 영원히 곁에서 떠났던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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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던 나에겐 나보다 더 어린 동생이 있었다.
나에건 네가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한치에 갈등도 없었다.
넌 다른 동생들처럼 장난꾸러기라던가, 말썽꾸러기가 아니었다.
너는 많이 약한 아이였다.
6살이던 너는 또래보다 작았고, 모든 것이 느렸다. 또 점점 잔병치레도 많아졌다.
부모님은 단순히 조금 늦은 아이라고 생각하고, 더 극진히 아꼈다.
왜냐면 나 또한 남들보다 느렸기 때문이다.

나는 의젓했다.
어떻게 보자면 일찍 철이 들었다.
어쩌면 일찍 철이 든 것은 내가 살아나기 위한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약하고 힘없는 너를 극진히 아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뒷전으로 물러났다.
난 어른들의 관심 밖이었고, 넌 어른들의 관심에 대상이었지만 우린 서로 미워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너가 8살이 되던 해
아마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이었지.
우연히 간 병원에서 하게 된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부모님은 단순히 네가 조금 느린 아이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었다.
8살이 다 되었지만, 말이 어눌한 너를.
그날 그 검사에서 난 네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의사의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의 표정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그쯤에서 멈췄으면 좋았으려나.
의사는 말을 더 이어서,
너에게 큰 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넌 단순히 지능이 딸리고 말이 어눌한 것이 아니라
12살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 말까지 들은 부모님의 얼굴은 세상이 무너지고, 모든 것을 다 잃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넌 입학 예정이던 초등학교가 아닌 특수초등학교에 다녀야만 했다.

그후로 부모님은 너를 더욱 극진히 아꼈다.
난 정말 이 집에서 존재 자체가 희미해졌다.
만나는 모든 사람, 부모님, 친척들은 동생에게 잘해주라는 말 그 이상도 이하도 하지 않았다. 난 겨우 10살이었다.
10살, 초등학교 3학년.
동생을 놀아주며 친척과 주위 사람들에게 형이니깐 동생에게 잘하라는 말을 듣기엔 어린 나이다.
그런 생활, 그런 말들보다는 놀이터에서 친구와 뛰어논다거나, 숙제하기 싫다고 행패 부리기 딱 좋은 나이다.
그런 나이에 내가 겪었던 일들 때문에 난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노력했다.
뭐든 좋은 게 있다면 다 너에게 주었고, 널 위해서라면 이 세상 모든 위험을 감수할 것만 같았다. 나에겐 그렇지 않았지만.
부모님에 노력이 빛을 보았는진 모르겠지만 너는 9살, 10살, 그리고 14살에 봄을 맞을 수 있었다. 네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날, 부모님께서 얼마나 행복해하셨는지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에겐 지어준 적 없는 웃음도 너에겐 무장해제 된 듯 지어주셨다.
그렇지만 난 형이니깐. 넌 아픈 아이니깐. 는 철이 들었으니깐.
그런 말들로 나를 다독여 보았지만, 내 안에 사랑을 갈구는 마음은 점점 크게 마음 잡아갔다.
그렇게 난 16살이 됐다.
이젠 정말로 철이 다 든 나이.
내년에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
그런 내 눈에 넌 아직 8살에 머물러있는 어라고 아픈 아이 같았다.
교복을 입은 너는 정말로, 정말로 어색했다.
부모님과 친척들 모두가 걱정했지만, 넌 특수학교에서 아주 잘 적응했다.
걱정이 애석할 만큼.
부모님은 그런 널 자랑스럽게 여겼고, 넌 그 기대에 부응했다.
난 철 지난 바람 빠진 풍선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계절이 여러 번 바뀌고 겨울이 찾아왔다.
부모님은 이제 당연히 너를 더 아꼈고, 당연히 이번 년을 잘 넘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한창 눈이 내리던 겨울밤
너는 갑작스러운 발작을 일으켰다.
부모님은 너를 응급실로 데려갔다.
나는 이게 너와의 마지막일까 알 수 없는 불안이 밀려와 같이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난 따라갔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는 너. 참 작구나.
중학생이지만 너무 작은 키와 체구.
그런 너를 보면 너무나 안쓰럽다.
부모님은 새벽을 지새우며 네 옆에 꼭 붙어있었다.
문밖으로 희미한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응급실 의자에 앉아 창문 밖으로 쳐다본 너.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의사는 말했다.
오전 10시 19분경 사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라고.
부모님은 세상이 떠나가는 듯 큰 울음을 뱉어냈고, 나는 실감이 가지 않아 눈 주변을 비볐다.
네가 없다. 이 세상에 이제 다신 널 볼 수 없다.
더 잘해줄걸, 마지막에 인사라도 해줄걸 후회해보지만, 이미 넌 우리 곁에 없다.

장례를 치르고 나오는 부모님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세상을 다 잃고, 더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참았다.
-부모님, 저도 있어요.
그 말은 하면 안 된다. 난 철이 들었으니깐.
어쩌면 난 네가 있기에 철들어 보였던 것이 아닐까.
설령 그렇더라도 난 울지 않았다.
너가 이제 세상에 없더라도, 내가 의젓한 형임은 변치 않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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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떠나고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 난 정말 어엿한 성인이다.
넌 아직 14살에 멈춰있구나.
날씨가 조금 쌀쌀하네. 따뜻하게 입어.
또 감기 걸리지 말고,
그곳에선 울지 말고.
응, 괜찮아 난 울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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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2mau
@유마유

🗒️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써본적이 없어서 이번에 한번 가져와봤습니다~
다음 작품 주제 추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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