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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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2 17:25조회 77댓글 4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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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스러진 달빛 아래, 함께 꿈을 한가득 늘어놓았던 너는 없었다. 분명히 바다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면, 쉬는 일 초가 그렇게도 아깝다며 하루종일 나누어도 부족한 말들을 한없이 쏟아냈는데. 그 말을 되새기던 귀에는 파도가 맞부딪힌 첨벙 첨벙 물소리만 들렸다.

- 이제 나밖에 없잖아.

더 이상 이야기를 들려주던 너는 없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앞에서 떠들던 너는 향기조차 남기지 않고 내 곁을 떠났다. 우리의 사이가 어땠냐는 원망을 뱉어낼 수도 없었다. 그저 너에게 이유 모를 사정이 있었겠지, 합리화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소중하게 남은 너를 욕할 수 없어서. 차마 그럴 수 없어서.

모래 위 걸었던 추억마저 파도에 휩쓸려 간 것만 같았다. 그 추억은 온전한 상태로 내 기억 속에서 흐르고 있는데. 이것마저 거짓으로 다가왔다. 애초에 이 모든 것이 거짓된 마음에 만들어진 몽상이었으면, 그것을 얼마나 대체 얼마나 바란 것인지를 생각하려면 더 오래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가야만 했다. 그렇지만 이 순간까지도 전부 현실에 불과했고, 또 느끼는 이 생각들마저 현실이었다.

현실에 원망했다. 욕할 수 없던 너를 피해 내가 보았던 것은 하늘이었다. 하늘의 순리, 같은 말들에 내 삶은 배반당했다. 저 바다로 걸어간다 한들 너를 만날 수 없다는, 그리고 내가 믿은 그 마음마저 철저히.

다른 이들은 나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잃고도, 또 어떤 일이 자신에게 다가온다고 한들 이겨내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이런 사례들을 들으며 나아가야 한다던 생각은 당연히 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의 발목은 네게 붙잡혔다. 너를 잃은 일이 있고 나서부터 나아가려 할 즈음이면 네가 두둥실 떠올랐다.

- 내게서 등을 돌릴 생각이야?

분명히 너는 그런 말을 할 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알고 있었는데, 이미 느끼고 있었는데도. 그것의 생김새는 온전히 너였다. 결국 나를 바라보는 네가 내 눈 앞에 있었다.

- 그럴 리가 없잖아.

이 날들은 반복되었다. 악몽에 불과할 이 일이 내게는 축복인 것 같았다. 다시 만날 수 없던 네가 악몽에서라도 볼 수 있다면 또 다른 하나의 축복인 것만 같아서. 그것이 재앙인 줄 모르고.

꽃 한 송이를 꺼냈다. 그 앞에 펼쳐진 바다는 여전히 푸른 색을 띄고 있었고, 또 여전하게 네 공기가 살아있는 듯 했다. 나는 바다 앞에 꽃 한 송이를 놓았다.

아네모네는 하얀 빛을 띄고 있었다. 네가 좋아하던 색이라던가. 나는 그 꽃 한 송이를 잠시 바라보았다.

- 언젠가 파도에 휩쓸려 가겠지.

그때는 꼭, 이 꽃을 본 네가 나를 미워하지 않기를. 그 꿈 속의 네가 온전히 미소 지으며 떠날 수 있기를. 나는 그렇게 바다를 떠났다.

_ 칠흑의 바다 앞에 놓았던 꽃 한송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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