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퍽질퍽순애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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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3 22:47조회 151댓글 22유건
장례식장이 눈물로 젖었다. 맹한 국과 밥을 조문객들이 조용히 먹었다. 이름 좀 날린 아버지의 아들인 것에 비해 적은 수. 하지우의 사진 앞에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흐느꼈다. 하지우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3일 내내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하지우의 누나는 울며 쓰러지길 반복했다. 하지우가 왜 죽어라 지켰는지 짐작이 갔다. 자연스럽게 장례식의 불은 이은채가 지켜야 했다. 눈물이 뺨을 적셨다.
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

교실의 공기가 무거웠다. 하지우의 빈자리가 어색하게 허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빈자리가 사무치게 익숙했기에 다들 눈물을 훔쳤다. 너는 이렇게나 좋은 사람이었구나. 제 3자는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죽음이기에 아이들 사이에는 침묵만 맴돌았다. 이은채도 그 침묵에 함께였다. 그 죽음이 자신의 탓인 줄 모르고.

묵묵히 하지우의 책상에 국화를 올리는 손길들을 보았다. 그래, 국화. 3일 내내 진득하게 보던 그 꽃. 창문에 바로 맞닿아 있는 하지우의 책상에 방충망 사이로 불어온 바람이 스쳤다. 후드득― 하고 국화들이 떨어졌다. 여름이 끝나고 겨울을 맞으려는 그 바람이 너무 시렸기에 바로 뒷자리에 있던 이은채가 창문을 닫았다. 우리 이번에 자리 붙었는데. 너한테 아직 말을 못했단 말이야. 눈가가 시렸다. 뒤이어 화끈하게 아렸다.

무언가 흐를 것 같아 눈을 비볐다.

급식은 먹지 않았다. 이은채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이 그랬다. 친한 친구끼리 조용히 속닥이거나 엎드려서 오지 않을 잠을 청했다. 무거운 분위기를 못 견디고 자리를 뜨기도 했다. 이은채는 자신 앞에 있는 책상을 멍하게 바라봤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네가 이렇게 한순간에 죽을 리 없다. 다 거짓말이야. 그럴거야.

마자막에 본 하지우를 선명히 기억한다. 내가 울어서 눈앞이 흐렸지만 똑똑히 봤다. 너는 내가 오기 전까지 눈을 뜨고 있었다. 절대 감지 않으려는 듯, 겨우. 울지말라고, 미안하다고. 그런 말을 남기고 넌 눈을 감았다. 너무 뜨거워서 잡고 있던 나도 화상을 입을 것 같던 네 손이 차갑게 식는 순간을 기억한다.

심정지를 알리는 기계음이 울리고 다급히 심폐소생술을 당하던 너를 기억한다. 네 입꼬리는 웃으려는 듯 파르르 경련하고 있었다. 네가 무언가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숨기려는 것 같기도 하고 알아봐 달라는 것 같기도 한 네가 전하지 않은 말 하나하나를 감히 짐작했다. 사실 전하지 못한 것이라도.


질퍽질퍽순애


나는 너의 죽음을 봤다. 네 눈동자는 왜 빛을 앓기 전 마지막 순간에 나를 담고 있었던걸까. 네 책상 위에 올려진 작은 액자 속 사진도, 수북히 쌓인 국화도 너 대신 답변하지 못 할 질문이었다. 그것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수많은 물음표를 내 안에 새겼다. 장례식장에서 혼자 너를 지키는 모습을 본 친구들이 조용히 곁에서 내 등을 쓸었다. 구역질이 나왔다. 너를 원망할 순 없었기에 네 아버지란 사람을 원망해야 했다. 혹시나, 그 자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병에 맞은 부위가 너를 더 아프게 했을까 봐.

다음날 이은채는 많은 물건들을 정리했다. 모두 너와 관련된 조각들. 작게는 하지우가 빌려준 지우개나 샤프, 같이 서울에 갔다가 졸라서 네가 사준 핀, 네가 한창 머리를 자르지 않던 시절 축구를 하기 전 빌리던 고무줄들, 생일 선물로 받은 니트나 크리스마스에 사준 향수. 그걸 꺼내다 방에 괜히 뿌렸다. 풋풋한 향이 방 안에 번졌다. 네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겠다며 그 추운 겨울에 백화점까지 가서 사왔을 걸 생각하니 웃음이 났던 그 향수. 그곳에서 옅은 플로럴 향이 났다. 투명한 핑크빛 액체가 찰랑거렸다. 지금 생각하니 뭘 선물 교환을 디올 향수로 하나 싶었다. 그것도 백화점에서. 진짜 미련하다.

그날 코트에 흰 목도리를 두른 널 기억한다. 맑게 웃으며 너가 제일 잘 어울리는 걸로 사왔다며 웃은 너는 정작 그 향수의 가격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너에게 주려고 가져온 내 작은 팔찌가 초라하게 달랑거렸다. 걱정이 무색하게 그 팔찌를 받은 넌 세상이 온통 네 것이 된 것처럼 웃었다. 붉게 물든 코가 신경 쓰여 빨리 영화나 보자고 했지만 너는 어린아이처럼 팔찌에 묶인 손목만 돌리며 웃었다. 바보 같은 하지우.

향수가 스며들면 탈취하기 어렵다. 나에겐 하지우가 그랬다. 아무리 털고 빨아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물건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커다란 박스에 모아 침대 아래에 박아 두었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이런 박스에 결정적인 단서가 있던데 나한테는 그런 게 없어서 어쩌나. 하지우가 죽은 건 살인 사건이 아닌 그냥 삼정지니깐. 항상 그 자리에 있던 물건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불편했다. 매번 쓰던 샤프가 없었고, 습관처럼 뿌리던 향수가 없었다. 그리고 너도 이제 내 옆에 없었다. 옷장에는 하지우와 찍은 인생네컷이 붙어있다. 작년 가을에 찍었던가? 그걸 보면서 아팠던 것 같다.

일주일이 지나고 국화가 올려진 책상을 치워졌다. 이은채는 하지우의 누나를 대신해 머물던 병실을 정리했다. 냉장고를 비우고, 화장실에 있는 칫솔을 치우고, 항상 내가 앉았던 소파와 책상 위를 치웠다. 한 시간이면 끝날 정리를 몇 시간이나 느릿느릿 치웠다. 네가 정말 사라졌다고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었다. 침대 옆 서랍을 열었다. 항상 있던 진통제와 해열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안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첫 번째 서랍에는 종이 쪼가리와 회색 구형 Mp3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찬란했던 사랑했던 그 시절만 자꾸 기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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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고 없어요 청춘의 시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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