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30 16:48•조회 42•댓글 0•율해
그 시절의 우리는 세상의 경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기울어진 들판을 달리며, 마치 하늘을 밟고 걷는 듯 웃음을 터뜨렸고, 바람에 휘날리는 작은 모자 하나에도 우리의 온 마음이 흔들렸다. 그 웃음은 너무도 맑아서, 풀잎에 맺힌 이슬조차 함께 반짝이며 웃는 것 같았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가볍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끝없이 달리게 했을까.
이제 와선 명확히 말할 순 없겠지만. 분명한 건, 그 순간마다 네가 있었고 내가 있었다는 것.
우리는 알지 못했다.
언덕을 오르면 또 다른 평지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언덕의 끝에 서 보니, 그곳엔 길이 아닌 작별이 있었고, 우리를 휘감던 빛은 이내 추억이라는 이름만 가졌다.
그날, 너는 환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나는 그 미소 속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네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 네 웃음소리를 흩날려도, 나는 끝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시간은 흘렀다.
계절은 변했고, 우리가 남긴 발자국은 풀잎 아래 묻혀 흔적조차 사라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순간의 햇살은 아직 내 마음의 언덕 위에서 빛나고 있다. 그때의 너와 그때의 설레는 심장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지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것이 청춘이었을지도 모른다.
무모하고, 짧고, 그러나 찬란했던 계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순간.
네가 웃던 자리, 내가 손을 흔들던 자리, 그리고 끝내 이어지지 못한 길. 그 언덕 위에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품고 살아왔다.
그 언덕을 다시 오르는 상상을 하며, 바람에 흩날리던 네 목소리가 그리워 미치겠다. 비록 너는 다른 길 위에서, 나는 또 다른 길 위에서 걷고 있겠지.
그 순간의 빛은 사라지지 않을꺼야. 언제까지나 내 마음 깊은 곳, 언덕 위의 햇살처럼 남아 있을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