盛夏的殘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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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1 11:25조회 82댓글 1낙수
장마가 끝난 후, 세상은 거울처럼 맑게 개었다. 푸른색과 흰색이 섞인 먹구름 조각들이 느릿하게 흩어지며,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 위로 아침 햇살이 금빛 비단처럼 드리워졌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 매미들은 그들의 짧고도 격렬한 생을 노래했고, 강변을 따라 늘어선 버드나무들은 바람 한 점 없는 침묵 속에서 나른하게 늘어져 있었다. 이곳, 봉황 고진의 여름은 늘 그렇게 끈적하고, 그렇게 찬란했다.

오래된 강가 서점의 삐걱이는 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열리고 닫혔다. 퀴퀴한 종이 냄새와 먼지 냄새가 뒤섞인 공간은, 누군가가 놓고 간 낡은 시집 한 권을 품고 있었다. 표지는 빛을 바랬지만, 누군가의 손끝에 닿았던 종이의 질감은 여전히 부드러운듯 했다. 그 시집의 여백에는 급하게 흘린 듯한 빗물의 얼룩과, 연필로 꾹꾹 눌러 쓴 무지개라는 단어가 남아 있었다.

강 건너편 낡은 정자 난간에는 누군가의 스케치북이 놓여 있었다. 흑연으로 빠르게 그려진 풍경은 강물과 하늘, 그리고 정자 아래를 지나는 은빛 비늘 같은 햇빛이었다. 하지만 그림의 한쪽 모퉁이에는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의 젖은 어깨의 흔적과, 미소 짓던 눈빛의 잔상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그것은 풍경에 녹아든, 지울 수 없는 감각의 기록인 듯 했다.

시간은 강물처럼 멈춤 없이 흘렀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던 어느 아침, 강가에는 이별의 침묵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무도 없었지만, 그 자리에 남아있는 고요함의 무게는 누군가의 부재를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떠나간 자와 남겨진 자의 감정은, 고진을 맴도는 끈적하고 찬란한 여름 공기 속에 섞여 오랫동안 배회했다.

성하적광년(盛夏的光年).

가장 빛나던 그 해 여름의 시간은, 결국 아무도 없는 강물 위에서 금빛 비늘처럼 영원히 부서지는, 단 하나의 덧없는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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