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도심록 [浪漫悼心錄] 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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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30 11:31조회 52댓글 1必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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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여름 끝자락의 온기가 신의 코끝을 스친다. 우의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보고 있는 것은 여름 수박 영상. 신은 난생 처음 보는 빨갛고 윤기나는 세모난 음식에 입맛을 다시며 빨려 들어가듯 화면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습기가 통하지 않아 구석에 증식하는 곰팡이와 냄새가 우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시중에 파는 곰팡이 제거제, 고작 그거 하나 살 돈도 없는 우 자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한다. 곧 다가올 신의 가을과 겨울 옷도 장만하지 못 했는데 봄옷이라도 대신 꺼내야 하나. 그렇다면 따뜻한 패딩 하나라도 사야 하는데 너무 비싸면 어떡하나.





날씨가 우의 마음을 대변하듯 반지하 창문으로 보이는 흙바닥이 점차 거센 비에 젖어들고 있었다. 아직 다 뽑지 못한 세잎클로버 더미가 우의 시선에 잡혔다. 언젠가 나도 세잎클로버 사이에서 빛날 수 있는 네잎클로버가 되겠지.





이튿날에 우는 신의 손을 맞잡고 시내로 떠났다. 선풍기를 사고 남은 돈은 고작 오만 원 남짓이다만, 신의 패딩 하나는 정말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일지 모른다.





맑지도, 흐리지도 않은 구름 낀 푸른 하늘이 기분을 더 좋아지게 만든 건가. 마치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시내를 떠벌리고 다니니 해는 뉘엿뉘엿 드러눕고 있다. 지금껏 구입한 물품은 신의 부츠와 패딩이 전부. 오만 원 탈탈 털어 샀지만 그 마저도 부족해 옆 사람한테 오천 원을 빌렸다.





노을을 빤히 바라보니 눈이 점점 아려온다. 신이 우의 손만을 꽉 잡아 시선을 맞춰 노을을 바라본다.


이런 게 낭만이라면, 나는 평생 낭만을 누려오며 살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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