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2호, 문 열어주세요!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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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6 00:30조회 59댓글 5유하계
유하계 _ 설꽃비

새벽 내내 잠을 설쳤다. 약 30분 간격으로 계속 깬 것 같았다. 마지막엔 거의 잠도 오지 않았다. 피곤해죽을 것 같았지만 이건 이전에 비하면 고통도 아니였다. 자꾸만 걸어뒀던 간식들이 생각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곤히 자고 있을 터였지만 혹시 몰라. 하는 생각과 쪽지가 떨어졌을 수도 있잖아. 와 같은 생각들로 자기합리화를 하며 그녀는 깰때마다 문을 열어 603호를 힐끗 쳐다보곤 했다.

"안떨어졌네..."

속으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며 큰 숨을 들이마쉬고 내쉬었다. 바깥공기를 마시는건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 같다. ...그치만, 또 어떻게 보면 좋았다. 정말 아주 조금이나마 어릴때로 돌아간 것 같아서. 밤공기 마시며 산책하던 그 날 밤으로.

그 때 충동적인 생각이 들었다. ...산책을 해볼까? 지금 시각은 5시. 사람들이 많이 없기도 하고, 게다가 어둡다. 누가 있기야 할까? 아까 옆집에서 문이 열리고 닫히던 소리를 잠결에 들은 것 같았지만... 들어갔겠지, 뭐. 나 같은 사람인거겠지. 하고 넘기려 애썼다. 그럼에도 들려오던 문을 닫을 때 들리는 청아한 종소리가 귀에 맴돌아 문앞에서 몇 번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까 나갔을 때의 해방감과도 같은 왜인지 모를 뻥 뚫리는듯한 감정을 또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그녀는 이미 문고리에 손을 올린채였다.

***

'괜히 나왔나?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다행히도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요하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도 들릴까 말까했다. 그럼에도 손이 미친듯이 떨렸고 숨이 막혀왔다. 이 고요함이 더 소름끼쳤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가슴 속 답답했던 한구석이 뚫리듯 시원했다. 새벽공기 때문이였을까, 아니면 그저 밖에 나왔다는 사실 때문이였을까. 지금은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 조용히 발걸음을 내딛어본다. 한걸음, 한걸음. 차례차례. 그 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워할래도 미워할 수 없던 불운의 목소리가.

"...어! 602호!"

라고만 말하고는 목소리가 끊겼다. 602호라면 자신을 부르는 것이였을 터. 놀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그가 있었다. 저번에 본 훤칠하고... 또 훈훈한... 아니, 아니지. 그나저나 이 남자가 왜 지금, 하필 여기에 있지? 게다가 왜 또 뭔갈 실수한 강아지마냥 제 입을 막고 있는건데?

"...뭐하세요...?"

겨우 입을 떼고 말을 건내보았다. 그간 입술이 찢어지도록 말하는 연습을 한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정말 마법같게도... 그에게 말을 건 순간 내가 연습했었던 기억들과 동시에 모든 걱정들과 불안이 사라졌다. 그러니까, 더 이상 연습했던 것들이 내 안엔 없다는거다.

"아, 죄, 죄송합니다. 혹시라도 불편하실까 봐... 저번 일 때문에. 그래서 입을 막았는데, 막기엔 늦었더라구요... 아하하..."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는 어색한 투로 말을 이어갔다. 저번에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한 적이 있었다. 뭐였더라, 되게 특이했는데. 강... 김... 이현? 이도?무튼간에 왜 그가 여기있는지가 궁금했기에, 아니... 어쩌면 이건 모순일지도 모른다. 편한 복장에 살짝 흐르고 있는 땀. 러닝중이였을까? 어떤 상황인지는 대강 감이 왔다. 그럼에도 이걸 제외하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그녀는 이에 대해 물었다.

"...김이도씨는 왜 여기 계세요? 아, 그... 무슨 뜻이냐면, 그러니까, 그게요. 음, 그니까 지금 시간도 늦었고..."

"푸, 푸흡...!! 푸하하!"

그는 이내 폭소했다.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내가 뭘 했길래 저리 웃는거지? 그치만... 솔직히 내가 생각해고 웃을만했다. 말을 저렇게나 못하는데 한국인은 맞나 근본적인 의심도 들었을 터였다. 나는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에게 물었다.

"아, 아니... 왜... 왜 웃으세요..."

나는 이때 몰랐지만, 그의 말로는 이 때 내 얼굴이 매우 빨갰다고 했다.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리는게 아주 살짝 느껴지긴 했다. 그치만 그 정도는 아니였는데...

"저, 강이담이에요. 강, 이, 담. 흐르는 강의 강, 숫자 이, 음... 담그다 할 때 담! 강이담."

"ㅇ, 아, 강이담씨... 맞다... 죄송합니다..."

"에이, 죄송하실 것 까지야. 그래도 한글자는 맞췄네요."

웃음을 참아가며 제 이름을 정확히 읊어주는 그가 한 편으론 사랑스러워 보이면서도 자신이 창피했다. 맞아, 강이담. 어떻게 까먹을 수가 있어. 이때야말로 얼굴이 빨개졌을 터였다. 익은 토마토가 된 것마냥 얼굴이 뜨거웠다.

"아, 왜 여깄냐고 하셨죠. 하기야, 지금 시간이 좀 많이 이르긴 하네요. 저는 조깅 좀 하고 있었어요, 원래 이 시간엔 안나오는데... 오늘따라 좀 뛰고 싶었나봐요. ...그쪽은요?"

"아, 저는 잠이 안와서..."

이후 한동안의 정적이 이어졌다. 그의 눈치를 보며 이 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왕창 했다. 사람과 대화하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고 두려운 것이 아니였다. 그저 한 번 본 사람이라 그런것이라 할지라도, 왜인지 상쾌했다. 그러나 상쾌함과 동시에 온몸에 경련이 일어난 듯 머릿속이 치지직거리는 것 같았다. 이명이 들린다. 피곤해. 죽을 것 같아. 답답해. 숨막혀... 역시 무리인가? 밖에 나오는건. 사람과의 대화는.

그리고 내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__

"그 때 충동적인 생각이 들었다. ...산책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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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하계입니다.
이전에 소설게시판에서 활동하다 잠시 접었었다, 설꽃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제가 좋아하는 장르를 쓰게 되었어요. 항상 예쁜 댓글을 남겨주시던 익명님 덕에 비록 인기는 없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글을 쓴다는 것 자체로도 기뻤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역시 익숙한 이름이 편한 것 같네요! 유하계로서 지금보다 더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

https://curious.quizby.me/Yusu…
ㄴ 제가 왜 접었었는지는 큐리어스 위에 살짝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오직 그것 때문만은 아니였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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