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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urious.quizby.me/Soyy…지구의 결말을 해피 엔딩으로 만들어라. 난이도는 최하 등급인 에프. 눈 감고도 할 정도로 힘 들일 필요 없는 난이도였다. 그럼에도 모든 엔딩에 힘을 쏟으라는 우주 연방의 지침에 나는 지구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언가를 알고 싶을 땐 우주 연방에 도서관으로 가는 게 제일 효율적이다. 난 곧장 도서관으로 가서 지구에 관한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지구는 무척이나 낭만 있는 행성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짧게 불타오르고 공멸한다는 그들의 결말도 마음에 들었다. '고독사'를 막으라니, 어쩌면 세상에는 고독사가 필요한 결말도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윗 머리들은 해피엔딩만을 유일한 결말로 단정지으니 까라면 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간을 조사하며 인간과 가장 유사한 생체회로, 장기, 그리고 외모까지 조작해내어 내 새로운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구로 달려들었다.
지구에는 한요가 있었다. 이름이 한요랬다. 최대한 인간 같아 보이려고 노력했는데 고갤 갸웃거리는 걸 보니까 사전조사 가지고 진짜 인간처럼 보이기엔 부족했던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대놓고 망한 세계에서 독한 방사능을 뚫고 어떻게 방호소까지 찾아왔는지 궁금했던 걸지도.
- 너는 이름이 뭐야?
그리고 한요는 꽤 웃긴 점이 있었다.
- 난 이담이라고 해.
- 이담? 이름이 특이하다!
[이름이 특이하다!]
그건 말하는 것과 생각이 완벽히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결말 개척자에게는 특이한 능력이 하나 있다. 그건 ‘글자’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글자는 책에서 튀어나온 행성의 이야기다. 책에 쓰일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엿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글자는 대개 서술자의 서술이나 인물의 독백 같은 것들로 구성된다. 쉽게 말해 글자를 읽는 건 일반 소설을 읽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건 실제라는 것을 제외하면.
- 여긴 우리 벙커인데, 식량은 너랑 내가 천 년 넘게 먹을 수 있을 만큼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한요가 들떠서 벙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벙커의 구조나 위치에 대해서도 사전에 공부해온 바라 흥미는 없었지만 재미있게 듣는 척이라도 해 줬다. 그리고 가끔씩 한요의 독백을 몰래 읽는 것도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들떠서는 ‘새로운 사람이 왔어!’ 하고 좋아하던지 ‘반응이 귀엽다!’ 하고 신나하는 것이 꽤 웃겼다. 시간 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한요는 활발했다. 고작 한 달 뒤에 죽을 사람 같진 않았다.
이상하게 한요의 미래가 머리에 펼쳐졌다. 한요는 미래가 없는데도 그랬다.
- 담! 이쪽으로 와 봐!
한요가 손을 흔들었다. 한요를 뒤쫓아가니 꽃밭이 있었다. 한요는 꽃을 한 아름 안고 코로 킁킁거렸다. 기분이 좋아 보이길래 똑같이 따라했다. 인간의 코로 킁킁. 신기한 향이 났다. 본래 몸은 코나 눈이나 입 같은 게 없었다. 그런 면에서 지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행성이었다. 꽃이란 건 있는 행성보다 없는 행성이 훨씬 많았으니까.
- 무슨 향이 나?
한요가 물었다. 난 대답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꽃내를 맡았다. 꽃을 제외한 다른 향은 맡아본 적이 없어서 거의 모르지만······
- 아마 귀여운 고양이에게는 이런 향이 날 거야.
까만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한요가 바닥에 앉은 채로 엉금엉금 기어와 내 바로 앞에 딱 붙어 검은 꽃을 붙들었다. 한요의 숨과 내 숨이 닿았다. 간지러운 기분.
- 하하!
그리고 한요가 웃었다.
- 이건 고양이 향이 맞아. 내가 다음 번엔 꼭 고양이 발바닥 냄새를 맡게 해 줄게!
한요는 또 이상한 말이나 했다. 고양이 향이면 고양이 향이지 고양이 발바닥 냄새는 또 뭐야. 냄새라니까 괜히 더러워 보였다. 한요는 엉덩이나 손이나 또 흙을 잔뜩 묻혀놓곤 꽃들을 꽉 쥐었다. 그리고 난 한요를 따라했다. 바닥을 구르거나 흙이 고르지 않은 땅에 핀 꽃들을 다른 곳에 다시 심어주는 것들을. 분명 내가 알고 있는 ‘꽃밭 산책’은 이런 개념이 아니었지만, 한요가 하니 그렇게 따라했다. 어쩌면 한요는 날 이상한 애로 여기고 있을지 모른다 생각하면서.
- 담! 재밌지.
한요 역시 이상한 사람이었다.
인간이라곤 자기 혼자뿐인데도 저렇게 밝다는 점이나, 의심이 지나치게 없고 순수하다는 점이나, 내 이름을 ‘담’이라고 부른다는 점이.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한요가 궁금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