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운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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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3 11:45•조회 21•댓글 0•여우비
“뭐야, 난 또 무슨 거창한 곳이라도 가는 줄.”

내가 널 데려 온 곳은 빙수를 파는 가게였다.

“봄에 웬 빙수?”

“빙수는 언제 어느 때에 먹어도 맛있어.”

너는 어이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나는 네 팔을 잡아 끌고 키오스크 앞으로 다가갔다. 아직 봄이였지만 먹음직스러운 빙수를 보니 침이 고였다.

“딸기랑 망고 하나씩 시킬까?”

“철이 안 맞긴 한데.”

“뭐 어때.”

나는 지갑을 꺼냈다.

“네가 사려고?”

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아무래도 끌고 온 사람이 얻어 먹을 순 없었다. 나는 말없이 웃어 보였다.

창가 자리에 마주 보고 앉았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는지 네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 있었다. 나는 턱을 괴고 창 밖을 살폈다. 바로 앞에 심겨진 벚나무에서 꽃잎이 와르르 쏟아졌다. 꽃 구경을 못한 게 아쉬웠다. 뭐, 이렇게 창으로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맞은편 테이블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 둘이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우리쪽을 힐끔거렸다. 그러다가 그쪽을 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눈을 두어 번 깜빡거렸다. 여자애는 내게서 눈을 돌려 너를 쳐다 보았다. 눈빛을 보니 너에게 호감이 생긴 듯 싶었다. 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테이크 아웃 할까?”

내 말에 네가 만지작거리던 휴대폰에서 얼굴을 들었다.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갑자기 뭔 개똥같은 소리야?”

“그냥 해본 말이야. 농담.”

너는 내가 마치 이상한 사람인 것 마냥 쳐다 보았다. 나는 피식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던 여자애 하나가 이리로 다가 오고 있었다. 손에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짜증이 났다. 저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이게 다 네 잘난 외모 탓이잖아.

너는 정말 재수 없게 생겼다. —잘생겼다는 말이다— 내가 못난 편은 아니지만 네 옆에 있으면 조금 위축되곤 한다. 너는 시원하고 말끔한 이목구비와 훤칠한 체격을 가졌다. 물론 나도 작진 않다. 180은 넘는다고. 푸른빛을 띈 네 머리칼은 산호초처럼 반짝거린다. 너는 바디를 닮았다. 어쩌면 그래서 네 이름이 바다인 걸지도 모른다.

“저, 번호 좀.”

여자애는 어느새 너에게 휴대폰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괜히 반대 방향을 노려 봤다. 힐끔 곁눈질하니 너는 멍한 채로 여자애와 휴대폰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도와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 잘난 외모를 가졌음에도 넌 네가 잘생긴 건지조차 몰랐다. 연애는 물론이고, 친구도 여태 나 하나 뿐이다. 예전에는 그 눈빛이 내 것인 것만 같아 기쁘게 도와 주었지만 이젠 왜인지 꺼려진다. 도와 주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바라 보며 안절부절하는 네 눈빛에 입을 열었다.

“얘 동성애자예요. 제가 남친.”

“네? 아, 네.”

평소 같았으면 여자친구가 있다, 이성엔 관심이 일절 없다는 식으로 거절했겠지만 갑자기 튀어 나온 내 말에 너는 놀란 토끼 눈을 떴다. 나도 내가 스스로 무슨 말을 한 건지 뒤늦게 깨닫고 아파 싶었다. 내 이미지. 하여간 너는 주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졌다.

“뭔 소리야?”

“그러게.”

“아니, 너 말이야. 갑자기 웬 남친?”

“그냥.”

“미친놈.”

네 거친 욕설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짜증이 났다. 그럼에도 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태연해 보이는 꼴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 사이 빙수가 나왔다. 스푼으로 빙수와 과일을 크게 떠먹었다. 너는 연유를 살짝 뿌려 한 입 가득 빙수를 넣었다. 괜히 뿌듯해져 웃음이 다 나왔다. 아까 전의 부끄러운 감정은 싹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맛있냐?”

“어. 존맛.”

“나도 연유 좀 줘 봐.”

“다 먹음.”

네가 내 앞으로 빈 팩을 흔들었다. 겉으론 짜증나는 척 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


나와 한바탕 놀고 조금 좋아졌는지 너는 내게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걱정이 더 앞섰다. 또 맞으면 어떡하지. 또 울면? 저 맑고 예쁜 눈에서 또 눈물이 쏟아지면 어떡해. 불안을 꾹꾹 눌러 마음속에 묻었다. 괜찮을 거다.

“또 맞거나 아프면 연락해.”

“매일 아파야겠다. 너한테 매일 연락해야지.”

“야.”

너는 알았다며 킥킥거렸다. 나는 너를 배웅했다. 네가 빌라 입구로 들어가고 아무도 없어 깜깜했던 네 집에 불이 켜질 때까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천천히 어스름이 내려앉은 길을 걸었다. 두 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고 멍을 때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깜깜한 집 안이 오늘따라 조금 외로워 보였다. 소파에 털썩 누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눈물을 흘리던 네가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와 줘야지. 내가 지켜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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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야기가 조금 짧은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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