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 ] 같이

설정
2025-04-01 21:28조회 46댓글 2이진
.. 터벅 터벅

남자 발소리다.
드디어 온 걸까 ?



터벅 터벅 ...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내가 기다리는 그 사람은 아니었다.




이렇게 문 앞에 앉아 기다린지 얼마나 지났을까 ?













.

뒤를 돌아보면 난장판이 되어있는 거실,
언제 묻은 건지 오랜 시간이 지난 끈적한 피 투성이 바닥, 갈기갈기 찢긴 소파, 벌레가 꼬인 주방..
말도 못할 망정 소름까지 끼친다.

이런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에
홀로 남겨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사람의 눈은
허무함과 공허함, 그리고 약간의 기대가 차있다.



언제 돌아올까 ?
오자마자 날 보며 환하게 웃어 주겠지 ?
그 따뜻한 품으로 안아 주겠지 ?

상상을 하며 그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띈다.
그렇게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지도 모른채 망부석이 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

아침이 밝아왔다.
고층 아파트엔 새 노랫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커튼을 쳐놔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기다리라고 하면 누구든 피폐해지고 어두워 질 터.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자고 깼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하염 없이 기다리기만 한다.

그냥 바보 같기도 하고,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기도 하다. 어쩌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 같기도 하다.












.

늦은 저녁, 발소리가 들렸다
이번은 다르다. 구두 소리인데 뛰고 있었다.
그가 기다리는 저는 아니지만
발소리는 문 앞에 멈춰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띠띠띠 -

철컥. 문이 열렸다.
참 오랜만이었다, 사람을 만난 것과 문이 열리는 걸 본 것이.



















" .. 하.. 시발... "

놀랄 수 밖엔 없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났는데 처음 들은 말이 욕이라니, 또 표정은 끔찍했다. 어이가 없었다.


" 기다린거야..? 언제부터 ? "

세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 그는 상관이 없었다. 그에게 시간은 중요치 않았으니.




" ..... "
" 하.. 너도 참 답이 없다. 죽었어. 이제 없어. 됐니 ? "

뭐 ? 그럴리가 없다. 오랜 시간 동안 보고 싶어 하염 없이 기다려온 그 사람이.
웃는 얼굴로 돌아오겠다고 인사를 건네던 그 사람이,
돌아오면 더 포근하게 안아주겠다던 그 사람이,
죽었을리가 없다.




" 뭐 ? 그딴 소리 하지도 마. 죽었다니 "
" 너야말로 지금 상황이 이해 안 되지 ? .. 한아 "
" 거짓말 치지 말라고 ! 사람 가지고 노는 게 재밌어 ? "
" 너 걔 죽었을 때랑 똑같아 지금. 걔 죽은 지 지금 몇달이 지났어, 우리 장례식도 마쳤잖아. 안 돌아와. 없는 사람이니까 이제 잊자, 응 ? "
" .. 지수야... 진짜야..? 그럴리가 없잖아.. 철이가... 그럴리가 없잖아... "

어느새 집은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 찼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때보다 더욱 절망적이었다.




" 돌아온다고 .. 약속 했는데 ... "
" .. 나도 슬퍼. 근데 너까지 이러면 난 어떡해.. 일단 우리 병원부터 가자. 너 지금 몸 상태가 말이 아니야 "
" .. 응 "
















.

" 영양 부족이래. 좀 입원해 있으면 나을 거야 한아 "






적막한 병실을 그 두명만이 채우고 있었다.
밤은 깊어져 사방이 어두워지고 그들은 작은 전등 하나에 의지한 채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혼내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누워있는 이에게 잔소리를 해댔으니.


" 움.. "
" 한아 졸려..? 그럼 빨리 자 "
" 응.. 근데 지수야 나 철이 보고 싶어 "
" .. 보고 싶으면 언젠가 꿈에 나오겠지. 근데 철이가 같이 가자고 손 내밀면 절대 잡지마, 거절해. 알겠지 ? "
" .. 으응.... "
" .. 진짜 졸렸나 보네, 바로 잠들었어. 하긴 몇날 며칠을 그러고 있었으니 "















.
.
.

눈을 떠보니 발에서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
얋게 물이 차있는 시냇가 위에 있었다.
하지만 물은 흐르지 않았다. 쥐 죽은 듯 멈춰 조용했다.

그 시냇가 건너편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 .. 철아... "
" 나도 많이 보고 싶었어 한아. 약속 못 지켜서 미안 "
" ..... "

그의 눈엔 이미 눈물이 한 가득 차있었다.
아까의 눈이 아닌, 기대가 많이 차있는 듯한 선한 눈이었다.







" 같이 갈래, 한아 ? "



















그의 숨소리가 끊겼다. 병실은 그의 집처럼 고요해져만 갔다. 홀로 남아있는 저의 손엔 작은 병이 있었다.

"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철이 만나서 잘 갔겠지 ? 난 이제 살 이유가 없네. 너희 둘 다 이 세상에 없어. 어쩌다 이렇게 됬을까 ? .. 보고 싶어 얘들아 "

























.
.
.

[ 지난 4일, 00병원의 한 병실에서 두명의 남자가 숨진 채 발견 되었다고 합니다. 한 명은 입원을 한 상태였고, 또 한 명은 보호자였던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환자는 영양 부족으로 숨졌고 보호자는 독약을 스스로 삼켰다고 합니다. 환자는 굉장히 평온한 표정으로 발견 되었다고 하고요, 그는 밝게 웃고 있는 남자랑 찍은 사진을 꽉 쥐고 있었다고 합니다. 셋이 친밀한 사이로 추측 되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
댓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