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12시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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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2 18:05조회 43댓글 0onke
시간은 어느덧 11시 59분 10초 경을 벗어나고 있었다. 손톱은 잔뜩 뜯어지고 어지럽혀져 손톱이라는 것을 알아채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이제 막 된 12시, 시계의 초침은 체감상 1초에 2번씩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거실에선 또 그것이 찾아왔다.

– 그르릉, 그릉...

이 일이 벌어진 일은, 며칠 전 장례식장에서부터 시작된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할머니가 죽었던 그날. 식인 늑대를 마주쳤던 그날. 나는 그날부터 12시의 흔적을 보기 시작했다.

*

7일 전, 할머니가 죽었다. 사유는 심장병이었지만 실상은 거의 안락사를 당한 수준. 할머니는 일평생 항상 ‵ 병원 놈들은 믿을 게 못 돼. ʹ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심장이 계속 아릿하다 말할 때도 병원 한번을 가지 않던 할머니였는데...

내게 남은 가족은 할머니 뿐이었다. 생각보다 할머니는 세상과 일찍 사별했고, 나는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왜일까? 할머니 앞으로 남겨진 보험금과 유산에 행복도 없지않아 있던 탓일까? 장례식장에선 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상단에 걸린 영정사진을 보았지만 나오는 것은 보험금에 대한 기대감, 그뿐이었다.

장례식장에 조문을 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할머니와 나는 평생을 아웃사이더로 살았기 때문에 더욱, 아무도 오지 않았다. 가끔 들리는 보험사 직원 뿐. 그마저도 사인만 받고 돌아가기 일쑤. 같이 밥 먹을 사람 하나 없다는 게 외로웠지만, 곧 들어올 몇 억을 위해 그것쯤은 억누르기로 했다.

입에서 나는 우걱거리는 소리가 식당을 가득 메웠다. 열무김치를 소리내어 씹어 삼키고 있었지만, 속은 공허했고 주변은 고요했다. 식당 안에선 생고기를 자르는, 서걱거리는 소리가 전체에 울려퍼졌다.

- 그릉...

어디선가 들린 들개 소리에 본능적으로 뒤를 돌았다. 당시 내가 앉았던 자리는 뒤만 돌면 바로 환한 통유리창이었고, 밖에선 음식물 쓰레기가 썩어가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던 유리창 너머에선, 산발의 사내가 나만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 심장을 부여잡았다. 머리는 엉키다 못해 덩어리로 뭉쳐 갈라져 있었고, 어깨엔 우수수 떨어진 비듬이 흩뿌려져 함박눈이 내린 것 같았다.

- 뭐, 뭐야...?

사내는 나를 노려보았고, 마치 잡아먹기라도 할 듯 입맛을 다셨다. 그것이 내 등 뒤에 있는 음식을 보았는지, 나를 보았는진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그것의 머리. 머리와 눈만 기억에 담겨져 있었다.

*

당일 밤 11시, 아마 그땐 머리를 감고 말리고 있던 와중일 것이다. 드라이기 바람은 따뜻했으나 어딘가 서늘한 등골은 따뜻한 바람으로는 만족되지 않는 듯했다. 조명은 꺼졌고, 이제 침대에 눕기만 하면 되는 일. 나는 어딘가 불안한 시계의 시침과 분침을 번갈아 바라보며 손톱을 뜯었다. 현재 시각, 11시 50분. 10분 뒤면, 또 그것이 나타날 것이다. 장례식장서 봤던 그 식인 늑대인지, 할머니의 남은 영혼 잔해인지. 아직도 정확히 분간이 가진 않았다.

- 댕 - 댕 - 댕 -

괘종시계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12시가 되었다는 알림. 나는 아려오는 명치를 가까스로 아무렇지 않은체 하며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오늘은 제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길. 찾아오지 않길. 속으론 빌고, 또 빌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적막한 고요 뿐...?

- 그륵...

또다시 들려왔다. 식인 늑대의 입맛 소리. 끔찍한 소리가 귀 전체를 채우자 나는 더이상 버틸 수 없는 소리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원래라면 심장 뛰는 소리만 들려야 할 집안이, 온통 늑대의 소리로 메워져 심장은 커녕 침 소리도 나지 않는 듯싶었다. 이 미친 소리가, 이 괴로운 소리가 오늘은 언제쯤 사라질까. 명치가 멍한 느낌을 받다 정신을 차려 다시 누웠지만, 잡음 때문인지 잠은 오지 않았다.

*

- 여기에, 사인 부탁드립니다.

얼마 뒤, 보험사가 찾아와 통장을 내밀었다. 할머니가 남겨둔 유산, 삼천만 원. 나는 통장을 손에 쥐곤 네 개 단위로 나눠진 영들을 세었다.

3,0000,0000.

통장을 손에 꽉 쥐었지만 이유 모를 속빈 감은 차지 않는다. 할머니가 보고 싶은 걸까, 생각하니 그건 또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보험사 직원이 돌아간 후에도 나는 그 자리에 서 통장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잃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 그륵, 극...

산짐승 소리는 귓가에서 또 맴돌았다. 집안에 누군가 있는 거 같은데, 별로 찾고 싶진 않았다. 할머니의 흔적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아름이의 흔적. 그리고 할머니의 흔적. 할머니가 그토록 아끼던 뒷산 들개 아름이의 영혼이 들어온 걸까.

- 같잖다, 참.

생각은 고이 넣어 통장에 넣어두기로 했다. 아름이어도, 할머니어도. 속내는 그리워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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