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림자 아래, 민들레가 핀다》— 민들레가 피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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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8 16:13조회 8댓글 0EIEI 🫶
그 아이는 늘 바람을 따라 걷곤 했다.
손에 든 건 바스락거리는 낡은 종이 한 장,
거기엔 누군가의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언젠가, 민들레가 피는 곳에서 다시 만나.”

그 말을 처음 읽은 건 아주 어릴 적이었다.
할머니의 책장 사이에 숨겨져 있던 오래된 엽서,
희미하게 번진 먹물 속에서 따뜻한 향기가 났다.
달빛 같은 문장이었다.

시간은 스르르 흘러,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 엽서는 버리지 못했다.
가끔 울적한 밤이면 그 글을 읽으며
불 꺼진 방 안에서 혼자 웃기도 했다.

어느 날,
기차에서 우연히 내린 낯선 마을에서
그 아이는 꿈에서 본 풍경을 만났다.
바람이 부는 들판,
그 사이사이에 피어난 수많은 민들레들.
그리고 저편, 나무 아래 누군가 앉아 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었다.
눈가엔 깊은 주름이,
손끝에는 먼지를 털지 않은 기억이 묻어 있었다.

"기다렸어요,"
노인이 조용히 말했다.
"아주 오래전부터요.
당신이 그 문장을 읽을 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건... 당신이 쓴 건가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적에,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남긴 말이었죠.
그게 당신에게 닿을 줄은 몰랐어요."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 순간, 바람이 불었다.
민들레 씨앗이 흩날리며 하늘로 떠올랐다.
노인의 그림자가 희미해지더니
달빛 아래 천천히 사라졌다.

아이의 손에선
엽서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 뒷면엔
새로운 문장이 남겨져 있었다.

“그리움은 시간을 거슬러, 결국 만나게 해.”

그리고 다음 날,
아이도 누군가에게 엽서를 적었다.



— “언젠가, 바람이 머무는 곳에서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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