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는 20분 남짓 흘린 땀이 질퍽거렸다. 개새끼가 나를 보는 눈이 질척거렸다. 주인을 걱정하는 개. 딱 그 정도로 생각했다. 여지를 받아먹기 싫어서. 5년이면 정이 쌓여 귀찮아질 수도 있지 뭐. 질퍽하고 질척하다.
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
- 야 두더지. 다 왔어.
- 으어어어어.
- 내가 왜 오늘 학교를 가.
잠잠한 농담을 던자며 버스에서 내렸다. 개새끼 옆에 있으니까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내서 멀쩡한 사람인 척 하고 있다. 지금 몸은 병신인데. 무대 뒤에서 죽어가다 무대에 올라오면 힘이 난다는 남돌들을 드디어 이해했다. 개새끼는 진작 공감하고 감사하고 사랑하고 있지만. 다큐에서 말하는 그들의 약이자 몬스터인 팬들을 향한 사랑은 다 개구라 인줄 알았는데 진짜일 수도.
개새끼가 내 귀에 이어폰 한 쪽을 쏙 넣었다. 요즘 이 노래 오천번 들어. 진짜로. 아니 어쩌라고. 개새끼의 유구한 노래 취향은 이미 익히 안다. 하도 내 유튜브 계정으로 플리를 주구장창 틀어서 -주로 병원에서 그랬다. 알고리즘에 뜨는 개새끼 취향 노래도 자주 듣는다. 그래서 개새끼가 들려주는 노래는 보통 익숙한 노래다. 물론 이 사실을 말하진 않는다. 뭐 찌질하니깐.- 이번에는 무슨 노래냐.
- 이건 진짜 좋거든? 진짜.
- 아니 그니까ㅋㅋㅋㅋㅋ
- 제목이 뭔데.
- 멈춰줘. 헤이즈 노래임.
헤이즈라면 나도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예를 들어 Underwater는 2년 전부터 꾸준히 내 하나뿐인 플리 앞부분을 차지하는 노래였다. -그냥 잠수타는 연인의 내용. 추천한다.- 신곡도 나오면 플리에 넣어 두기도 하고. 지능은 문제가 있어도 아직 듣는 귀는 멀쩡하네. 개새끼 추천 노래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 멈춰줘, 제발 나를, 여기서 너에게 뛰어가는 날 멈춰줘.
- 나는 너를 잊는 법을, 네가 없는 나의 길은, 모르니.
- 날 멈춰줘.
질퍽질퍽열병
크. 완전 내 노래네. 그래 나 좀 제발 멈춰주라. 나 죽겠다 너 없으면. 내가 계속 너한테 뛰어가고 있는데 그걸 모르냐. 개새끼 눈치는 참 5년 동안 뒤져있다. 이쯤 되면 모른 척하는 건 아닌지. 아니 모른 척 하는거면 어장 아닌가? 개새끼는 존나존나 착해서 어장 따위 안 칠 사람인 거,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지. 5년을 봤는데. 그냥 이건 짝사랑에 지친 내 치기 어린 생각이었다.
개새끼는 이런 내 심정도 모르고 이번에 본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얼마나 슬프고 그걸 보며 얼마나 오열했는지 설명했다. 뭐, 김지원이랑 김수현? 아니 김수현은 그 사람이잖아. 미자 킬러. 내가 시비를 털자 얼굴이 개연성이라며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멍청이.
- 흑흑, 진짜 너무 슬퍼.
- 눈물 광광 쏟음. 보여? 나 눈 작아진 거?
모르겠고 드라마 내용이 뭐, 재벌 집 딸이 불치병에 걸렸는데? 이혼할 뻔 했다가? 사랑을 하고? 뭐 뭐, 자꾸 살고 싶게 하지 말란 말이야? 그러다 살아서 행복하게 할아버지 할머니 될 때까지 살다가 죽었다~ 라는 내용. 얼굴은 개연성이 맞다. 저 내용이 TV N 시청률 1위라고? 우리 누나가 보는 걸 봤던 것 같기도 하다. 하여간 여자들은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럴 시간에 농구를 한 판 뛰지.
그 후 개새끼는 학교까지 걸으며 계속 그 드라마의 OST들이 얼마나 좋은지 설명했다. 이미 플리까지 만들었다고. 자금까지 개새끼는 플리가 몇 개지? 나는 개새끼에게 5년 전부터 유튜브나 뭐 그딴 일을 해보라 권유했다. 솔직히 아깝잖아. 노래 취향도 괜찮으면서 혼자 들으려고 만드는 건. 어쩌다 개새끼가 너도 같이 듣잖아. 라고 대답한 적이 있는데, 심장이 떨려서 더 이상 권유할 수 없었다.
개새끼의 조잘조잘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좋아해서 그런 건가. 사랑이 원래 이런 건가. 나는 왼손으로 머리를 적시는 땀을 슥슥 닦으며 흐릿하게 들리는 개새끼의 말을 들었다. 명재현님이 라이브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너무 잘 한다, 차은우가 없으니 나라가 안 굴러간다, RM이 라이브를 켰는데 가치관이 존잘이다, 아 그러고 보니 방탄은 컴백 언제 하지? 이런 맥락.
지나가던 사이렌 소리가 귀를 강타했다. 나도 이러다 쓰러지면 저렇게 실려가나. 개새끼가 귀가 아픈지 미간을 찌푸렸다. 쓰러지지 말아야지. 소리에 예민한 개새끼를 위해서. -진짜 개가 따로 없다.- 한심하고 멍청한 두더지인 나는 오늘도 개새끼 옆에서 배를 글적인다.
내 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니 아버지 이 세글자가 적혀 있었다. 나는 잘 나오지도 않는 목을 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네 아버지. 저 오늘 학교 갑니다. 동아리요. 네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숨 막히는 대화가 드문드문 이어진다. 아버지가 먼저 전화를 끊고 나는 한숨을 쉬며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 뭐라셔?
- 처신 똑바로 안 하면 족친다네.
- 나 튄 줄 아사고.
- 아····.
저도 나오기 싫었어요. 아버지. 고열 때문에 한창 시달리는데 뭐하러 놀러 갑니까. 이렇게 말하면 안그래도 병신인 몸으로 처맞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굳이 또 참았다. 싫은 소리 들을 바에는 미리 기는 게 나았다. 내 신세가 이렇지 뭐. 개새끼랑 연애라도 한다면 -못한다.- 난 그대로 개죽음이다.
최근 1년 동안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름 알바도 뛰고 작년에는 공부까지 했다. -2학기 기말고사 평균 2등급. 기본 4등급인 나에게는 눈부신 성장이었다.- 실제로 아버지가 날 때리거나 유리컵을 깨시는 일은 현저히 줄긴 했다. 비록 이번 열병으로 다시 리셋되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개새끼 때문이네.
전화 내용을 들은 개새끼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어디선가 나온 호올스를 아드득 씹어 먹었다. -내가 타이레놀같은 약을 씹어 먹는 것과 비슷한 습관이다. 맛대가리 없는 박하맛 사탕은 보통 정신을 차리려 먹는다.- 호올스 파란색. 혀와 목을 희생해 잡생각을 없애겠다는 굳은 집념이 보였다. 내가 아버지한테 갈궈질 때면 개새끼는 꼭 이런 표정을 지어 보이곤 한다.
왜 항상 그런 표정을 해? 사랑하지도 않잖아.
내 표정이 여전히 슬펐을까.
처음 괜찮냐고 물었던 네가 아직 여기,
- 괜찮아?
- 표정이 슬퍼 보여서···.
정말 괜찮아?
삐걱삐걱삐걱삐걱삐걱삐걱····?
https://curious.quizby.me/ugun…^ 퇴고 없어요 영원비례여름?
BGM: 멈춰줘 - 헤이즈
가사 인용 일부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