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30 16:20•조회 167•댓글 18•채로인_Roin
그런 날이 있다. 화창한 여름날 언제나 짜증났던 그 햇살이 유난히 기분이 좋게 느껴질 때. 자연스레 머리 속에 '청춘' 이라는 단어가 그려질 때. 그 날은 딱 그런 날이었다.
***
화창한 햇빛 아래, 정확히는 그늘진 스텐드. 운동장 체육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타들어갈 것 같은 서로의 정수리에 손을 대보며 뭐가 그리도 좋은지 까르르 웃어대곤 했다. 누구의 정수리가 더 뜨겁냐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당장 이곳을 뛰쳐나가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싶다는 시답잖은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예비종이 울리면 재빠르게 일어서서 교실을 향해 달려가곤 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앞머리 따위는 신경쓸 겨를도 없이, 해맑게 웃으며 달렸다.
그러니까 그 날은 한마디로... 청춘만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동아리 활동'을 명분 삼아 체육관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시시콜콜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있는데 그 때 네가 체육관 문을 열고 달려왔다. ...커다란 수박을 들고선.
"야! 맛있겠지!! 누구 이거 자를 줄 아는 사람?"
아무도 없었다.
입을 크게 벌리곤 호탕하게 웃었던 너였다. 넌 늘 뭔가 저지를 것 같은 얼굴로 나타나곤 했지. 아무 대책도 없이 수박을 가져온거냐며 아이들이 꾸짖어도 맛있을거라고 눈을 반짝이던 너. 체육관 창문 너머로 햇빛이 넘실댔다.
"야, 에어컨 좀 누가 켜봐."
"그래서 수박 어쩔건데?"
"먹자! 야, 여기서 떨어트리면 깨지지 않을ㄲㅡ"
쾅ㅡ!
수박이 떨어졌고, 금이 갔다. 큰 소리와 함께 정적이 흘렀다. 쎄한 표정으로 모두가 수박을 떨어트린 범인을 눈치주고 있었다. 5초 후, 범인은 두 손을 들고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깨졌네...! 야, 누구 먹을 사람...?"
"나!"
수박을 가져온 장본인이였다. 아무 생각이 없는건지, 아니면 분위기를 눈치채고 전환시키려던 의도였던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시작으로 점차 아이들이 몰려들더니 우리는 모두 수박을 감싸고 둘러앉아 다들 수박을 한 조각씩 들고는 먹고 있었다. 과즙이 흘러 넘쳐 옷에 분홍빛 자국이 보였지만 뭐 어떠랴. 수박만큼이나 청량하고 달콤한 추억 하나가 생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