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30 22:36•조회 11•댓글 0•유하을
지하철이 터널 속을 달린다.
지하철 2호선은 오늘도 같은 원을 돌고 있고, 승희는 그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다. 칠 년째 같은 시간에 같은 역에서 타서 같은 역에서 내린다. 사람들은 모두들 그렇게 산다고 믿었지만, 그게 아니란 걸 아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끊고, 누군가는 떠난다.
승희는 무릎 위에 놓인 검은 가방을 가만히 쳐다본다. 가방 안엔 유골함이 있다. 사람 모양을 하고 살았던 무언가의 조각들. 어머니는 어제 화장되었고, 승희는 유골함을 들고 하루 종일 도시를 돌았다. 집에는 아직 들어가지 않았다. 들어가면, 이제 정말 끝이니까.
누군가 내 옆에 앉는다. 약한 향수 냄새. 그는 평범한 남자였다. 양복을 입었고, 검은 머리, 손에 들린 회색 폰.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세상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도 아무도 서로를 제대로 보지 않는다.
갑자기 그는 한 마디를 던졌다.
“무겁죠.”
승희는 눈을 돌린다. 그의 시선은 가방을 향하고 있다. 어쩌면 가방 모양으로 느껴지는 죽음의 냄새 같은 것을 읽은 걸까.
“좀요,” 승희가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알아요?”
남자는 웃지 않았다. “나도 옮겨본 적이 있어요. 한 번, 아니 두 번인가. 한 번은 동생, 한 번은 어머니.”
“그럼 아시겠네요.”
“네. 그건 무게가 아니죠. 질량이에요.”
“차이가 뭐죠?”
“무게는 중력에 반응하는 힘이고, 질량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크기예요. 사람이 없어져도, 그 질량은 어디론가 가요. 아무리 태워도, 아무리 잊어도.”
승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은 어딘가 이상하게 과학적이었고, 또 어딘가 진심 같았다. 지하철이 갑자기 흔들렸다. 유골함이 살짝 움직였고, 그 순간 승희는 웃음을 삼켰다.
“웃으셨네요.”
“아뇨.”
“웃었어요. 그건 좋은 징조예요.”
남자는 잠시 후 내렸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승희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무게는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지하철은 계속 돌고 있었다.
이제 내릴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