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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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7 00:00조회 18댓글 0Di
처음부터 널 믿었던 건 아니였어.
그렇다고 의심한 것도 아니지.
너는 의심할 만큼의 흔들림도 없었으니까.

넌 항상 정확했다.
그때의 내 말과 행동,
내가 몰랐던,
내가 느꼈던 감정들까지.

"넌 항상 그래."
"자기가 한 일을 잘 잊잖아."
난 반박할 필요가 없었다.
그 말이 익숙했어서.
대신
내가 틀렸을 가능성이 먼저 떠올랐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기억보다
너의 말을 더 믿기 시작했다.
너의 기억은 항상 완벽했고
내 기억은 비어 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만난 날,
너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너가 나로 인해 확신한 기억들이."

그 문장은
마침표도,
이유도,
완성도 없던
항상 완벽한 너의 말들 중
유일하게 끝이 없는 말이었다.
이상하게 난 그 뒤를 잇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난 깨달았다.
넌 날 사랑한 게 아니라
너의 이야기에 날 억지로 끼워 맞췄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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