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7 23:19•조회 45•댓글 4•한지우
여울: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곳, 감정의 격류를 의미한다.
비는 하루 종일 내렸다.
지수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창밖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시골길을 바라보았다.
경기도 외곽, 어릴 적 살던 동네.
그곳에 다시 발을 들이는 건 거의 20년 만이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은 조용히 끝났다.
지수는 서울에서 혼자 살며, 어머니와는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 “괜찮다”고 말했고, 지수는 그 말에 안도하며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이제, 그 거리는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마당 있는 집은 따님 분이 가지세요.”
유산 정리 중, 변호사가 건넨 말이었다.
지수는 처음엔 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집을 직접 보고 나서 결정하고 싶었다.
철문 앞에 도착했을 때, 지수는 잠시 차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빗소리가 차창을 두드리고, 감나무의 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어릴 적, 가을이면 감을 따기 위해 어머니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수는 그때마다 나무 아래에서 손을 흔들며 “조심해!”라고 외쳤다.
철문을 밀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당은 생각보다 잘 정돈되어 있었다.
풀은 자라 있었지만, 감나무 아래엔 낙엽이 거의 없었다.
누군가 최근까지 돌본 흔적 같았다.
현관문을 열자, 고약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수는 전등을 켰다.
거실은 그대로였다.
낡은 소파, 오래된 TV, 그리고 벽에 걸린 가족사진.
사진 속 어머니는 젊었고, 지수는 초등학생이었다.
아버지는 그 옆에 서 있었지만, 지수는 그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서랍장을 열었을 때, 지수는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지수에게’라고 적힌 봉투.
어머니의 필체였다.
그는 편지를 열지 않고,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었다.
지금은 읽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 집을 둘러보고, 기억을 정리하는 게 먼저였다.
부엌으로 향하자, 싱크대 위에 놓인 찻잔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누군가 방금까지 차를 마시고 나간 듯한 느낌.
지수는 찻잔을 들고 냄새를 맡았다.
녹차 향이 은은하게 남아 있었다.
“엄마가 마지막까지 여기서 살았구나…”
그는 중얼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감나무 아래, 흙이 살짝 뒤틀린 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수는 그곳을 파고들지 않았다.
아직은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날 밤, 지수는 마당 있는 집에서 첫 잠을 잤다.
낡은 이불을 덮고, 어릴 적 쓰던 방에 누웠다.
창밖으로 감나무가 보였고,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잎이
서늘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잠들기 전, 지수는 어머니의 편지를 다시 꺼내 들었다.
하지만 봉투를 열지 않았다.
그녀는 편지를 가슴에 얹고, 눈을 감았다.
“내가 왜 이 집에 다시 온 걸까…”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어렴풋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수야, 이 집은 네가 누구였는지를 기억하게 해줄 거야.”
그녀는 일어나서 철물점에 들렀다.
늦은 밤이였지만 철물점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저...혹시 삽 있어요?"
"예? 안들려예. 아아 거 삽? 그건 칠 천 원."
그녀는 조금 망설였지만 칠 천 원 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엄마. 엄마의 진심...내가 느껴볼께."
-By 한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