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보이지 않는 여름
||| 닿지 않은 달콤한 낙하
결국 밤은 왔다.
학원 수업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시계 바늘이 10시를 가리키자마자 나는 다시 그 골목으로 달렸다.
낮에 보았던 그 삭막하고 낡았던 담벼락은 온데간데없고,
달빛을 머금은 붉은 벽돌은 다시 어제처럼 신비로운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낮에 서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약속이라도 한 듯 캔커피 하나를 땄다.
딸깍-
"오, 혹시 서준이니?"
담장 너머,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여름이의 목소리.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낮 내내 가슴을 짓누르던 불안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응. 나야. 사실... 낮에도 잠깐 왔었어."
"낮에? 여길?"
여름이의 목소리에 당황한 기색이 서렸다.
"학원 가기 전에 너무 궁금해서 달려왔는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더라고.너 공부하느라 바빴던 거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담장 너머에서 나뭇잎을 만지는 듯한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여름이는 한참 뒤에야 아주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아, 나는 낮에는 마당에도 잘 안 나오고, 창문을 잘 안 열어. 세상이 너무 밝으면 오히려 아무것도 보기 싫어지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음, 그냥 그런 게 있어. 빛이 너무 강하면 소리도 가려지는 기분이랄까. 너를 만날 수 있는 이 시간이 나한테는 가장 빛나는 시간이야."
여름이의 말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그저 '밤이 더 선명하다'던 여름이의 말이 그녀만의 특별한 감성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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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낮엔 내가 와도 못 만나겠네?"
"응. 미안해. 대신 밤엔 언제든 여기 있을 거야. 약속할게."
여름이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어딘가 애틋했다.
그 애틋함의 이유를 찾는 대신, 가방에서 낮에 미리 사두었던 작은 초콜릿 봉지 두 개를 꺼냈다.
"너 공부할 때 당 떨어지면 먹으라고 초콜릿 사 왔는데."
"정말? 우와, 나 초콜릿 진짜 좋아해."
담장 너머 여름이의 목소리가 아이처럼 들떴다.
나는 담벼락 위를 훑어보았지만, 사람 키보다 훌쩍 높은 벽 위로 물건을 얌전히 올려두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근데 어떻게 줄까? 너 어딨어?"
"난 담장 바로 안쪽 마당에 나와 있는데..."
"담벼락이 너무 높아서 어떡하지... 여름아, 던져도 돼? 너 받을 수 있겠어?"
"어? 던진다고?"
여름이가 당황한 듯 되물었지만, 나는 이미 초콜릿을 손에 쥐고 가늠을 마친 뒤였다.
"받아!"
나는 여름이가 쉽게 낚아챌 수 있을 만큼 아주 가볍게, 그리고 부드럽게 초콜릿을 담장 너머로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넘어간 초콜릿 상자가 여름이의 손에 가볍게 안착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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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하지만 기대했던 "나 잡았어!" 하는 소리 대신,
짧은 비명과 함께 무언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름아! 괜찮아? 미안해, 맞은 거야?"
나는 당황해서 담벼락에 바짝 붙어 소리쳤다.
혹시라도 얼굴에 맞은 건 아닐까, 다친 건 아닐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참 동안 정적이 흐르더니 이내 담장 너머에서 풋, 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핫! 아, 괜찮아. 안 다쳤어."
"정말? 미안해, 내가 너무 세게 던졌나 봐."
"아니야, 내가 운동 신경이 좀 없거든. 발등에 맞았어. 걱정 마, 초콜릿은 잘 받았어."
여름이가 초콜릿 봉지를 맞고 웃었을 모습을 상상하니 미안하면서도 왠지 모를 웃음이 났다.
"다행이다. 다음부턴 그냥 대문 앞에 두고 갈게. 괜히 너 잡지도 못하는 거 던지지 말고."
"아냐, 서준아. 그래도 덕분에 진짜 많이 웃었어. 오늘 사실 좀 우울했거든."
여름이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나는 다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초콜릿 상자를 소중하게 만지고 있을 여름이를 떠올리며 몰래 미소 지었다.
"고마워, 서준아. 잘 먹을게. 근데 너... 공부는 언제 해? 나랑 이렇게 떠들어도 돼?"
"너랑 대화하는 게 나한테는 유일한 낙이야. 엉켰던 머릿속이 다 풀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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