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8 17:51•조회 74•댓글 5•소야
송은호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뻗은 손에 들린 휴대폰에서는 웬 계단 오르는 소리가 났다. 손가락이 화면을 누를 때마다 휴대폰도 같이 흔들렸다. 이번엔 꽤 오래간다 싶은 생각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힘 빠지는 게임 오버 효과음이 흘러나왔다.
아, 씨. 말도 안 돼.
송은호가 휴대폰 화면을 들이밀며 말했다. 거기엔 천사가 둥 둥 떠 있었다. 살리시겠습니까? 라는 글자 밑엔 보석 오십 개 그리고 광고 버튼이. 캐릭터는 고작 오백십 계단 올라가 있었다. 최고 기록 삼천에 발끝만큼도 미치지 못했다. 억울해도 덥긴 더운지 찬 방바닥에 고대로 등 대 놓고선 다리만 버둥버둥. 송은호가 몸 비틀어가며 앙탈 부려 댔다. 아니이 솔직히 이건 에바지. 캐릭터가 계단에서 떨어진 자리엔 미로 찾는 것마냥 방향 바꾸기만 열몇 개 늘어진 기막힌 계단 배치가 있었다. 지세운은 송은호 휴대폰 받아 들곤 보석 오십 개 주고 살아나기 버튼 눌렀다. 못생긴 캐릭터가 반짝 빛 내면서 제 자리에 돌아왔다. 송은호는 캐릭터 되살아나는 효과음 듣곤 잽싸게 휴대폰 뺏어 들더니 다시 계단 오르길 시작했다. 얼마 가지도 못하곤 떨어질 걸 알면서도 지세운은 게임 오버 효과음을 기다렸다. 띠로링 하는.
아! 기다린 소리는 머지않아 들려왔다. 비명과 함께였다. 송은호는 뒹굴뒹굴 구르다가 바닥에 제 뺨 붙여서는 열을 식혔다.
화내면 더 덥다.
화 나는 걸 어떡해. 아 더워.
가만히 있으면 하나도 안 더워.
내 이십 년 인생 최고 개소리다 진심. 여름 존나 짱나.
짜증 날 게 뭐 있냐. 고작 계절인데.
여름은 고작 계절!
김치 몇 개 그리고 흰 밥 담긴 조촐한 식판 들고 지세운은 국자를 도로 통에 걸어 놓았다. 다 식은 황탯국 위 둥둥 떠다니는 계란 건더기가 국자에 걸려 미끄러졌다. 오늘 운세 진짜 뭣 같네. 같이 작업하던 아저씨들은 돈가스 나온다면서 신나서 노래까지 불러 대던데 지세운은 돈가스 양념에 밥만 비벼 먹게 생겼다. 그래도 한국인 밥심이라고 지세운은 식판 들고 젤 구석에 자리 잡았다. 테이블에 식판 턱 내려놨는데 텅 빈 국그릇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렇게나 쏟은 양념이 밥에 스며들어 있었다. 지세운은 얌전히 자리에 앉아 누룽지 만들듯 밥을 바닥에 꾹 눌렀다. 그러다가 씨팔, 밥은 삼킬 수만 있으면 됐지 싶어 한 숟가락 떠 김치랑 같이 먹었다. 웬 한식에 일본식 경양식 소스가 입안에서 마구잡이로 섞였다.
지세운은 계란 못 먹었다. 알레르기 때문이었다. 그게 평생 뒤쫓아오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외식은 꿈도 못 꿨다. 집밥도 조심해서 먹어야 했다. 송은호가 제일 좋아하는 튀김 음식도 계란 안 들어간 걸로만 골라 먹었다. 삼 년 전이었나, 송은호 생일날 학교 끝나고 조촐하게 생일 파티나 열었는데 밥이랑 미역국만 덜렁 있는 것이었다. 케이크도 없고 좋아하는 튀김 음식도 없었다. 지세운은 홧김에 밖에서 떡볶이랑 튀김 사 왔다. 계란 안 먹은 지 꽤 됐다고 내성이 약해지기라도 한 건지 고작 그거 하나 참고 먹어보려다가 응급실 실려 갈 뻔했다. 그 이후로 송은호랑 미련한 짓은 안 하기로 약속했다.
야 여긴 밥도 준대.
그냥 내가 싸 줄게 그거 들고 가면 되잖아.
계란 나오는 거 알아서 걸러 먹음 돼.
부루퉁한 얼굴 한 송은호 보면서 지세운이 덧붙였다.
게다가 여기 무려 공짜야 공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이 거대한 음식물 통 안으로 눌어붙은 밥이랑 김치가 쏟아졌다. 먹다 남은 것들 잔뜩 섞인 황탯국이 찰랑거렸다. 그런데도 땀 냄새밖에 안 났다. 지세운은 찌꺼기처럼 남은 조각 같은 음식들이 집 안에서 무슨 냄새를 풍기는지 알고 있었다. 그건 버려진 것, 서서히 썩어가는 것, 따라 곰팡이 슨 것의 냄새였다. 그래서 지세운은 남몰래 음식물 통에 코 박고 킁킁거려봤다. 비릿한 계란 냄새가 났다. 날파리들이 쏟아지는 음식물에 깔려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도 음식물의 수면 바로 위를 낮게 날고 있었다. 지세운은 서둘러 머릴 뒤로 물렸다. 사람이 많아서 냄새가 퍼지지 않는 건가. 그러더니 슬슬 주변 눈칠 살폈다. 뭐 잘못한 거 있는 사람마냥 지세운은 서둘러 식판 제출하고 급식소를 빠져나갔다.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니 점심시간은 고작 십 분 남짓이 남아 있었다. 믹스커피 하나 타 먹음 끝나는 시간이었다. 지세운은 가만히 앉아서 쉴까 커피라도 타 마실까 고민하다가 종이컵 하나 집어 들었다.
더위는 장마가 가신 뒤에야 찾아온다. 드디어 비 그쳤다 하고 좋아할 새 없이 밑에서부터 끝없이 올라온 고온 기류가 작은 대한민국 덮쳤다. 지세운은 그래서 장마가 졸라게 싫었다. 비 오는 날엔 바닥이 미끌거려서. 고작 몇만 명 중 한 명한테만 일어나는 공사 중 추락사 기사가 재수 없게 머리게 박혀서. 비 안 오는 날엔 햇볕이 뜨거워서. 챙 없는 안전모가 따끔거리는 얼굴은 못 가려줘서. 지세운은 다 완성되지도 않은 건물에 위태롭게 서서 기둥 그림자 뒤로 몸을 숨겼다. 장마가 끝났다. 여름이라기보단 찜통에 가까운 온도에서 사람들은 들끓었다. 열사병을 피해 가며 겨우 일 끝내고 집에 오면 유독 더위 잘 타는 송은호가 바닥에서 녹아 가고 있다.
여름만 되면 송은호는 집에 오길 싫어했다. 전기세를 아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여기로 첨 이사 오고 날씨 슬 더워질 때가 되자 뭣도 모르고 에어컨 틀었다가 요금 폭탄 맞은 얘긴 유명하다. 집주인이 두고 간 전기 효율 오짜리 에어컨을 여름 내내 틀어 놓는 돈이면 과장 좀 보태서 명품 가방 하나 살 정도. 그런데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안이 이렇게 더위에 푹푹 찌고 못 살던 곳은 아니었다. 사단은 송은호가 편의점 야간 알바에서 잘리고부터 시작되었다.
송은호가 편의점 야간 알바를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쯤이었다. 첨엔 되게 어렵고 피곤할 줄 알았는데 새벽 두 시부터 여섯 시 사이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가끔 피곤한 날엔 그냥 테이블에 엎드려서 잘 때도 있었다. 완전 월급 루팡에 에어컨 루팡 난방 루팡이 따로 없었다. 점주가 그 사실을 알아채기까지 자그마치 일 년이 걸렸다. 송은호는 완전 해고 당했고 그 대신 웬 셀프 계산대가 들어섰다. 그 이후로 지독한 열대야가 올 때마다 송은호는 되도 않는 투정을 부려 댔다.
웃통 까구. 우리 집에서 젤로 시원한 방바닥에 제 등 대고는. 체온이 옮겨 가 바닥이 뜨거워질 때마다 송은호는 다시 찬 바닥으로 몸을 굴러 댔다. 잔뜩 습해져서 끈적거리는 방바닥 먼지들이 그 몸에 달라붙는 줄도 모르고. 더워어 더워어 하는 말이 메아리처럼 종일 방에 울렸다. 송은호는 더워서 잘 잠에 들지도 못했다. 자기 기분 안 좋을 때마다 무한의 계단, 걔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 하면서 계단 올라가는 소리로 불평불만 대신하곤 했다. 상대적으로 더위 덜 타는 지세운은 송은호 옆에서 종이 몇 장 겹쳐서 부채질해 줬다. 아직도 갚을 돈 몇천 남긴 송은호 앞에서 에어컨 틀잔 말은 감히 못 하겠어서 그냥 그걸로 대신했다.
넌 나 없음 어떡할라고.
네가 없긴 왜 없냐?
갑자기 죽을 수도 있잖아.
그럼 나도 콱 죽어버리지 뭐.
죽는단 말을 왜 이렇게 쉽게 해. 송은호는 대답 없이 하던 게임이나 계속 해 댔다. 휴대폰에서 뿅뿅 아이템 같은 걸 먹는 소리가 났다. 요즘 무한의 계단은 옛날이랑 다르게 하는 것도 참 많았다. 드레곤을 잡고 아이돌로 데뷔하고. 세상에 있지도 않은 던전 컨셉으로 몬스터랑 대치하고. 게임에서 보석을 얻는다고 현실로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송은호는 게임에 열중했다. 냄비에 물 올리는 와중에도. 카페에서 커피 타는 도중에도. 뭐가 현실인지 뭐가 게임인지 구분조차 못 하고. 송은호는.
겁도 없는지 높은 계단을 자꾸만 올라갔다. 자꾸만.
올라간 건 송은호인데 되레 떨어진 건 지세운이었다. 비가 오던 날이었다. 쏟아질 듯한 장대비도 아니고 오는 줄도 모르는 보슬비였다. 그래선지 흐린 날임에도 불구하고 작업이 지속되었다. 습하고 더운 공기에 비까지 내리니까 온몸이 금세 젖어갔다. 땀인지 빗물인지 분간도 잘되지 않았다. 안전모가 땀 때문에 미끄러져 자주 시야를 가렸다. 지세운은 자꾸 안전모를 뒤로 고쳐 썼다. 비가 오는 날 유일하게 좋은 점은 햇빛이 덜하다는 것이었다. 굳이 천장이나 기둥 뒤에 숨을 필요가 없다. 지세운은 맨 꼭대기 층에 섰다. 하필이면 물이 고여 마찰이 덜했다. 지세운은 더위에 쩔어 제대로 된 생각을 잘 못 했고. 뇌가 덜 돌아갔고. 휘청휘청거리다가 고대로 미끄러져서 육 미터 아래로 추락했다.
일어났을 땐 하루하고도 열다섯 시간이 지난 뒤였다. 수술을 한 번 했단다. 되게 좋은 이인실 병실에 누워 있었는데 온몸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족히 한 달은 병원에서 요양해야 할 것 같은 몸 상태였다. 지세운은 뭣보다 병원비 걱정을 제일 먼저 했다. 들어 보니 다행스럽게도 산재 처리가 된 듯싶었다. 간호사에게 듣기로는 송은호가 어제도 그제도 찾아왔댔다. 걱정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그랬다. 그 모습이 왠지 상상이 안 가서 지세운은 조금 떨떠름했다.
놀랍지만 당연하게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지세운은 심지어 혼자 침대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얌전히 누워 있다가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겨우 침대에 앉은 지세운은 몇 분이고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휴대폰을 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책을 보는 것도 하다못해 뜨개질하는 것도 불가능. 지세운은 그제야 병실의 티브이가 왜 그렇게 높은 곳에 달렸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세운은 간호사에게 리모컨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뒤 온몸을 비틀어가며 겨우겨우 티브이를 켰다. 화면을 돌려 가면서 여러 영상을 봤다. 요새 들어 이렇게 한가한 것이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시간이 되었다. 간호사가 식판을 끌고 병실 안으로 찾아왔다. 밥을 먹고 싶었는데 수저를 들 수가 없어서 역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았다. 영양소가 골고루 편성된 급식 같은 식판 보면서 지세운은 차라리 송은호가 다쳤더라면. 그런 생각을 했다. 전혀 맵지 않은 백김치. 잘 구워진 떡갈비. 쌈장과 상추. 작게 썰린 사과. 콩밥에 황탯국. 계란 하나 없는 황탯국. 그 많은 환자의 식사를 준비하면서 오직 지세운 한 사람을 위해 따로 끓인 작은 황탯국. 간호사에게 황탯국을 눈짓하자 숟가락으로 국물을 뜨곤 그 위에 작은 황태 조각을 올렸다. 지세운은 목을 길게 빼서 정성스레 그 한 입 받아먹었다. 계란이 안 들어가서 그런지, 아니면 병원식의 일종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되게 맹맹한 맛이 났다.
그리고 그날 오후 송은호가 병문안을 왔다.
지세운이 급하게 응급실에 실려 갈 때 송은호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커피나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송은호에게 전화 올 곳은 딱 세 군데밖에 없었다. 첫째, 지세운. 이 경우는 제일 중요하므로 오는 즉시 받는다. 둘째, 스팸. 이 경우는 무시한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알바 자리 면접을 보러 다녔던 곳의 사장. 이 경우 역시 중요하므로 꼭 받도록 한다. 일하다 말고 주머니에 넣어 둔 송은호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대부분 스팸일 게 뻔했지만 왠지 꼭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 송은호는 잠시 고민했다. 전화받은 건 벨 소리가 세 번 울렸을 때쯤이었다.
― O병원 응급실입니다…
그다음부터는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급히 가방을 챙기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알바 누나가 손목을 붙잡았다.
무슨 일 있어? 어디 가?
그, 다쳐서, 응급실에……
누가?
친구, 가족. 그중 지세운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몰라 송은호는 잠시 망설였다.
같이 살아요.
아… 오늘은 얼른 먼저 가 봐.
감사합니다.
그날은 잘 타지 않는 택시도 탔다. 지세운이 봤으면 눈깔 돌아갔을 값이 나왔다. 겨우 계산하고 나와 수술실에 들어간 지세운을 기약 없이 기다렸다. 지세운이 제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송은호는 그제야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수술은 세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힘들어 보이는 의사를 붙잡고 물었는데 잘 끝났다고 했다. 조금 오래 자고 있을진 몰라도 깨어나긴 깨어날 거라고 했다. 웬만해선 장애도 남지 않을 거라고, 아주 축복받았다고 했다. 송은호는 그게 정말 축복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정 근처가 되어서야 송은호는 집으로 들어갔다. 택시는 야간 수당이 붙은 데다가 버스는 죄다 막차가 끊겨서 한 시간 동안 걸었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자마자 씻고 방바닥에 누웠는데 여느 날처럼 뒤지게 더웠다. 아. 더워. 아아. 더워어. 그렇게 소리쳤는데도 시원한 바람 하나 불지를 않았다. 점심때부터 굶은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지세운 없는 집에서 누군갈 위해 해 줄 수 있는 음식은 없다. 송은호는 계란 하나 없는 냉장고를 떠올렸다가 금세 잊었다. 뭔갈 하고 싶다는 의지 자체가 들지 않았다. 더위 때문에 몸이 따끔따끔거렸다. 방금 씻고 나왔는데 벌써 땀에 젖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곤 무한의 계단에 접속하려다가 그냥 그만뒀다. 휴대폰은 바닥에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아주 먼 곳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곰팡내가 났다. 닫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 통에서부터 뭣 같은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씻다가 발 매트 위로 벗어 놓은, 땀과 습기에 젖은 외출복에서 채 마르지 않은 구정물 냄새가 퍼졌다. 사람이 없어서 냄새가 잘 퍼지는 건지. 고작 지세운 한 명이 이깟 냄새 따위 신경 쓰지 않게 할 정도로 주변을 꽉 채우는 건지. 뒤척이던 송은호는 문득 두려워졌다. 고작 계절뿐이 아닌 여름을 보내면서. 한 달, 혹은 그 이상의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제가 혼자 겪어야 할 것들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송은호는 아직 겪지 않았지만 미래에 겪을지도 모를, 아니 그럴 확률이 높은 상황들에 대해 비관적인 상상을 했다. 그러고는 사람 온기 느끼고 싶어져서 야, 하고 불렀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그제야 아 병원이지 중얼거렸다.
지세운이 깨어난 건 그로부터 이틀 뒤 아침이었다. 송은호는 그 소식도 못 듣고 바쁘게 커피나 만들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병원으로 향했다. 미라처럼 온몸에 깁스하고 어색하게 인사하는 지세운 보면서 처음으로 한 생각은, 와, 자세 졸라 웃기네, 였다. 석고처럼 양팔이 굳어서는 관절만 끼익 끼익 움직이는 게 구체관절 인형이나 다를 게 없었다.
지세운은 송은호를 간호사로 부려 먹었다. 야 일으켜 줘. 야 저거 좀 틀어 줘. 야 휴대폰 좀 갖다줘. 송은호는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지세운 불쌍한 얼굴만 봤다 하면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병원이라 그런지 에어컨 하난 잘 틀어 줘서 좋았다. 송은호는 그냥 집에 가지 말고 지세운 퇴원할 때까지 여기서 눌러살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그건 아니다 싶었는지 고갤 저었다. 그 대신 지세운을 열심히 봐 두기로 했다. 한 번 올 때마다 그동안 못 본 만큼 봐 둬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눈 부릅뜨고 이틀 치 지세운 얼굴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송은호는 왠지 울 것 같아서 이를 악물었다.
너 나 없어도 괜찮냐.
티비나 보던 지세운이 말한 건 그때였다. 목에 커다란 경추 보호대가 채워져 있어서 송은호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주제에 똥폼이란 똥폼은 다 잡았다. 송은호는 안 운 척 애써 담담하게 대답했다.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여름인데도?
지세운이 없던 이틀간 송은호는 여름 하나를 통째로 경험했다. 비가 오면 어디에서 물이 새는지. 습기를 방치하면 어디서부터 곰팡이가 생기는지. 더운 공기가 얼마나 음식을 빨리 썩히는지. 못 버틸 정도로 더울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필요 없던 것들이 성큼 다가오는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송은호는 아, 더워, 너무 더워, 하나도 안 괜찮고, 여름 졸라 짱나. 참았던 눈물 왕왕 터트리면서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목울대만 몇 번 울렁이다가 그냥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뭐어, 여름은 고작 계절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