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고양이》 ― 슬픔과 환상의 계절 ―
설정2025-08-08 15:49•조회 31•댓글 5•EIEI 🫶
가을은 갑자기 찾아왔다.
비가 그친 뒤, 차가운 공기 사이로 말라가는 나뭇잎 냄새가 스며들었다.
그날, 나는 이상한 꿈을 꿨다.
꿈속에서 어린 시절 살던 집으로 돌아갔고, 마당에는 낯익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회색 줄무늬 고양이.
분명히 본 적 없는 고양이인데, 이상하게 익숙했다.
그 고양이는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올해도 네가 날 기억해줘서 고마워."
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믿기지 않게도… 진짜로, 그 고양이가 내 정원에 앉아 있었다.
매일 오후, 고양이는 정원 한가운데 있는 오래된 감나무 아래에서 졸곤 했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그곳이 제자리였다는 듯이, 편안하게.
나는 그 애를 ‘가을이’라 불렀다.
가을처럼 왔다가, 가을처럼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가을이의 목에 작은 종이 묶인 낡은 목걸이를 발견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고양이는 돌아올 겁니다. 해마다, 누군가가 그리워할 때마다.”
그 글귀를 본 순간, 기억의 틈이 열렸다.
나는 어릴 적, 아주 사랑했던 고양이를 잃은 적이 있었다.
비 오는 날, 나를 기다리다 차가운 길 위에서 떠난 작은 친구.
그 아이의 이름도, 회색 줄무늬였다는 것도, 그제야 떠올랐다.
가을이는 해가 지면 내 방 창가에 앉아 나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슬프도록 따뜻했고, 그 속엔 내가 잃어버린 시간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흐린 오후, 가을이는 감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고, 하늘은 조용히 눈을 내리듯 낙엽을 흩뿌렸다.
나는 가을이를 묻으며, 마음 깊은 곳에 이 말을 속삭였다.
“이번엔 먼저 보내지 않을게. 매년, 기억할게.”
그 후로, 매년 가을이 되면
창밖에서 들려오는 작은 발소리에
나는 조용히 창을 연다.
어떤 날은 아무도 없고,
어떤 날은, 그 익숙한 눈동자가
어스름한 황혼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
마치 꿈처럼.
아니, 어쩌면 정말로—
가을의 끝에서, 나는 다시 그 아이를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