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어둠이 땅거미처럼 깔린 밤이었다. 억수 같은 비가 쉬지 않고 쏟아져 내렸다. 나는 폭풍을 피해 허물어진 기와집에 몸을 숨겼다. 인적 드문 산길 옆이었다.
낡은 문은 삐걱거렸고 썩은 나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 안은 서늘한 습기로 가득했다. 천정의 녹슨 기와 위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적막이 숨 막힐 듯 나를 감쌌다.
달빛은 묵묵히 자정을 알렸다. 매미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밤. 바깥은 오직 빗소리뿐이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불현듯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바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몸을 웅크렸다. 차가운 기운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마치 얼음장 같은 손길이 나를 어루만지는 듯했다. 시야가 흐려졌다. 어둠 속에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희미한 향냄새가 스쳐 지나갔다. 분명 빈집인데. 그 향은 연약했지만 집안을 맴돌며 나의 모든 숨을 빼앗는 듯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냄새는 더 짙어졌다.
달콤한 것 같으면서도 비릿한 냄새. 차라리 귀신이 형체를 드러내 비명을 지르게 할 일이었다. 알 수 없는 존재가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기침이 터져 나왔다. 마른기침. 컥컥, 목을 긁어내리는 듯한 통증. 그 틈을 타 어둠 속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고 가늘었다. 어린아이의 울음 같았다.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바로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나는 벽에 바짝 기대 숨을 죽였다. 울음소리는 점차 커졌다. 애끓는 한이 담겨 있었다. 가슴을 후벼 파는 절규였다. 그러나 소리는 어디서 오는 걸까.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 끝이 시렸다. 서서히 몸이 굳어가는 것 같았다. 추웠다. 비바람 치는 바깥보다 이 방이 더 차가웠다. 등골이 오싹했다.
서늘한 공기가 내 몸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벌벌 떨었다. 그때였다.
천정의 녹슨 기와 위에서 떨어지던 빗방울이.
핏물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 뚝.
― 뚝.
― 뚝.
핏방울은 내 눈앞에서 흐릿하게 번졌다. 붉은 점들이 점점 커졌다. 기와집을 둘러싼 어둠이 짙어졌다. 그 속에 무언가 형체가 나타나는 것 같았다.
희미하게 흔들렸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핏물로 얼룩진 흰옷. 원한이 가득한 검은 눈동자. 입술은 찢어질 듯 벌어져 있었다.
피를 토하듯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했다. 소리 없는 비명. 나는 얼어붙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몸은 이미 녹슨 기와 아래 차가운 흙바닥에 뿌리 박힌 듯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핏물은 이제 빗방울이 아니었다.
― 주륵, 주르륵.
마치 거대한 핏줄이 터진 듯 흘러내렸다. 그 피는 마루를 적시고 내 발끝을 감쌌다. 따뜻했다. 나의 피가 아니라면 이렇게 따뜻할 리 없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눈을 감았다.
그 핏물 속에서 서늘한 손길이 내 손을 잡았다. 아주 차갑고, 동시에 뜨거운 손이었다. 그 손은 나를 끌어당겼다. 내가 발버둥 쳐도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의 모든 것이 핏물 속에 잠겼다.
녹슨 기와는 오늘도 슬피 비를 토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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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애 || 한은 전염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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