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운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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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2 08:41•조회 53•댓글 2•여우비
*이번 회차는 전 회차와는 다르게 또 다른 주인공인 ‘너’의 시점으로 쓰였습니다.*



처음의 여름은 그랬지. 늘 뜨겁고 열정적이고 과도하고. 널 처음 봤을 때 난 아주 소심하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아이였어. 너는 밝고, 활달하고, 끼 많은 아이였지. 널 보면서 참 많이 배운 것 같아.

지금 넌 울고 있을까, 늘 그렇듯 무표정일까, 정신을 잃고 웃고 있을까. 다 괜찮은 것 같아. 그냥 너라는 존재가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공존하는 것이였어서 그래. 너도 실은 알고 있겠지? 나는 널 심심풀이 감정 쓰레기통으로 볼 때도 많았다는 걸. 그런 내 패악질을 너는 그저 모르쇠 하고 살았지. 나는 솔직히 너한테 조금 많이 고마워.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니? 나는 쭈뼛쭈뼛 엄마 품을 벗어날 생각일랑 못 하고는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지.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을 하고 묵묵히 나를 안아 주셨어. 그런데 너는 정반대였지. 오히려 울고 계신 너희 어머니를 뒤로하고 혼자 고개를 빳빳이 들고 무표정한 거야. 그런 널 보면서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 초라한지를 느껴버렸어. 신기하게 나는 그날 이후로 한 번도 펑펑 울어본 적이 없어. 심지어는 형의 기일에까지도. 내가 성인이 되었다면 술을 퍼마시면서 형 생각 맘껏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너랑 시시콜콜한 직장 얘기 연애 얘기 하면서 아침 반길 수 있었을 텐데. 이러고 나니까 후회가 밀려오는 거야. 너는 절대 내 마음 이해 못 할 걸.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게 이거 하나 뿐이라는 사실이 오늘따라 너무 비참하고 외롭더라.

첫만남 얘기를 마저 해보자면, 우린 그 흔하디 흔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도 아닌 장례식장에서 서로를 처음 봤어. 그때가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이였지 아마. 형의 기일과 너희 아버지의 기일이 고작 하루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린 조금 많이 늦게 알아차렸지. 아마 너와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은 되었을 것이야. 우리 열여덟 살 때, 그해 너희 아버지 기일에, 네가 아팠거든. 기억 나? 많이 앓았거든. 그때 너 눈물도 흘렸는데. 펑펑 울다가 무슨 눈이 퉁퉁 불어 오징어가 되버린 거야. 속으로 진짜 많이 웃었다. 이걸 말하면 너는 불같이 화를 낼까? 조금 불안해지네. 이해해주길 바랄게.

이건 비밀인데 말이지. 나는 사실 형의 기일이 생각나지 않았어. 그것 뿐만 아니라 형에 관한 모든 걸 통째로 잊었지. 심지어 형의 존재까지도, 모조리, 전부. 그렇게 나는 13년 동안 외동으로 컸어. 부모님은 그저 내가 상처를 심하게 받아 달라진 거라고 여겼고, 내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나에게서 형을 지우려고 노력하셨지. 나는 그렇게 컸어. 뭐, 너는 알 수도 있겠다. 어때, 내가 좀 이제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나쁜 놈으로 보여? 그렇다면 유감인데. 나는 모두에게 어떤 식으로 보여도 상관 없지만 너한테만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내 추악한 욕심인걸 알지만 그래도. 사람마다 보이기 싫은 밑바닥 하나 정돈 가지고 있잖아? 너도 그럴 거라 생각해 난.

네 곁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좀 알겠더라. 네가 나한테 느꼈던 감정. 그건 아마도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무언가야. 이름을 이야기 하기엔 내가 조금 많이 부끄러워서. 편지를 쓰다보니 벌써 여긴 새벽 세 시가 넘었어. 이쯤에서 이만 줄일게.

밥 잘 먹고 다녔으면 좋겠다. 푹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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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는 조금 다른 측면으로 보는 두 주인공의 만남 이야기 입니다. 아마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장르 맞습니다. 이야기가 많이 짧네요. 다음엔 길게 가져오겠습니다.

오늘도 역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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