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 올랐다 내렸다, 갈팡질팡 했다. 열이 내리면 속은 또 질퍽거려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울렁울렁. 난기류 속 비행기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언제쯤 벋어날까. 너에게서.
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
똑똑 철커덩 야 살아있냐? 개새끼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왔다. 와서 하는 건 없었다. 폰을 만지작거리고, 가끔 책을 보고, 플리를 듣고, 춤을 추고··· 아 재밌다. 개새끼 덕분에 입원한 꼴이라도 병원이 지루하지 않았다. 네가 없는 하루는 너무 길어.
개새끼는 걱정이 존나 많았다. 주인을 보필하는 개처럼 온갖 사소한 것까지 묻고 챙겨주곤 했다. 밥을 먹었냐고 화내던가 잠은 똑바로 잤냐고 으르렁거리던가. 정말 개새끼같다. 오늘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 밥 먹었냐?
- 아니 못 먹었는데.
- 시발왜안먹는데내가먹으라고했지.
- 어? 빈약하면밥이라도먹어야될거아냐.
- 속 안 좋아서.
개새끼는 납득도 못한 주제에 괜히 이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돼지. 밥을 못 먹는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멀미가 나는 듯 속이 울려 몸을 기대고 꾹 눈을 감았다. 내가 귀찮냐고 묻는 개새끼를 무시한 채.
밥을 먹었다. 분명 먹긴 먹었지. 다 게워 냈어도 일단 입에 처넣고 삼키긴 했으니까. 지금까지 열이 아무리 올라도 게워 내기까지 하진 않았는데. 이번 열병은 존나 이상했다. 내가 그사이 널 더 사랑하게 되기라도 한 건지.
- 허, 내가 환자라서 봐준다.
- 응.
- 싸가지 시발이네.
어쩌라고, 하 죽을 것 같다. 다 꺼졌으면···. 약을 먹고 열을 재봤다. 훅 떨어져 있었다. 장마가 끝난건가? 나이스. 존나 나이스. 마침 내일이 중간고사였다. 그래도 시험은 치겠다. 나는 다급하게 개새끼에게 물었다.
- 우리 시험 범위가 어디지?
질퍽질퍽열병
학교를 가니 익숙한 목소리들이 나를 반겼다. 요이 연약남~ 어떡해, 안그래도 말랐는데 뼈만 남았어 시발. 같은 소리들을 먹금하고 내 자리로 걸어갔다. 개새끼가 나에게 안뇽 하며 인사했다. 또한 먹금했다. 반에 병신들밖에 없다.
띵동띵동, 국어 시험 시작과 동시에 잠들었다. 당연하게도 아는 문제가 단 하나도 없었다. 이쯤되니 내 미래가 좀 걱정되었다. 이지랄로 살면 나중에 어떻게 하나 생각이 들었다. 이게 쓸모없는 걱정이란 걸 알게 된 때는 먼 훗날이 아니었다.
시험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는 짐승들의 울분과 후회가 가득했다. 역사 더 외울걸, 수학 기출 다른 거 풀걸. 지랄. 내가 저 다짐을 몇년을 보는데. 이제는 지겨울 지경이다. 그중 하나가 내 점수 근황을 물었고 나는 과목별 몇 번으로 줄 그었는지 알려 주었다.
보통의 도파민 코스를 돌았다. 노래방, 피씨방, 떡볶이, 또 피씨방··· 게임을 매일 해도 그렇게 재밌냐고 불만이 들렸다. 맨날 비슷비슷한 남돌들 보면서 항상 다른 환호성을 지르는 것과 똑같지 않나? 정말 이해가 안된다.
- 야 야 다 싸물고 숙소나 찾아.
가장 멀쩡한 짐승이 현실을 자각하고 해야 할 일을 했다. 아 맞다 계곡 계곡, 다들 분주하게 폰에서 토스를 열고 재산을 확인했다. 야 시발 나 2000원 있는데? 야 이새끼 613원 있다. 제정신이 아닌 게 확실하다. 그니까 집에나 있자고···.
개새끼가 계곡과 캠핑장 속 싸고 잘 빠진 펜션을 찾았다. 음 사진 잘 나오게 생긴 게 딱 개새끼 취향이다. 나는 여기 한 표. 개새끼가 뭘 좀 아는 새끼라고 칭찬해주니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눌러 참았다. 여기로 예약하자고 재촉해서 조졌다. 이제 문제는 하나인데···.
- ?야 두더지 니 얼굴 개뜨거운데.
- 뭐래.
눈치없는 개새끼. 일부러 열 오르는 걸 티 안내고 있었는데 초를 친다. 개새끼의 말 한마디로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 되었다. 뒤늦게 더워서 그렇다, 해명을 해도 연약한 -아니다.- 새끼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 니 계곡 갈 수 있냐?
- 그니까. 저렇게 약해 빠져서?
- 그니까 미술관이나 가자고.
물론 이 의견은 8에바 1좋은데?로 기각 되었다. -저 좋은데?는 물에 빠지기를 혐오하는 새끼의 반응이다. 물론 기각 되었다.- 즐길 줄 모르는 새끼, 컨셉이냐? 하지 마라. 같은 우려 담긴 덕담은 덤이었다. 그렇게 별로냐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고 어느새 계곡으로 가야 하는 날이 왔다. 시발. 벌써 존나 힘들다. 버스에서도 시끌시끌 지하철에서도 시끌시끌. 안 지치냐고 한마디 하면 수백개의 환자 취급을 받아야 했다. 우여곡절 펜션으로 도착하고도 바로 계곡으로 나가 몸을 담궈야 했다.
- 아!!!! 하지마!!!! 야 이 사람들아!!!
- 야 빨리 던져.
- 하나아 두우울 셋.
풍덩.
예상대로 한명씩 던져지고 있었다. 설마 환자 어쩌구 해놓고 날 던지진 않겠지. 번쩍. 어? 아니잠시만이거아니잖아 나를 왜 담궈. 나 환자라고. 아니 열 내리긴 했는데, 그래도 내가 지금 아 잠시만 미안해미안하다고···.
풍덩.
으어어 죽겠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다. 빌어먹을 열병 때문에 한달동안 침대에 누워만 있었더니 체력이 저질을 넘어 시체가 되고 있었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하는 망상을 뭉글거리며 했다. 개새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두더지 밥 먹어! 내 밥 챙겨 주는 건 개새끼 밖에 없다. 훌쩍.
개새끼가 구워준 고기 두 점 먹고, 따라진 콜라 한 입 홀짝. 왜 이렇게 못 먹냐. 그러게. 계속 밥을 못 먹으니 입이 짧아진 건지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해도 구역질이 나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잊을 정도로 즐거웠다. 개새끼가 있어서.
내 여름의 시작과 끝은 너야.
하지만 그게 나 혼자서 만들어 낸 이야기라면,
결말도 혼자 이어야겠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수평선 너머로.
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
https://curious.quizby.me/ugun…^ 퇴고 없어요 여름을 사랑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