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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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8 19:56조회 71댓글 1必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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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 공원 지하에는 연고 없는 자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똑같이 생긴 통에 담겨 이름이 사라지길 기다린다. 그래야만 함께 지낼 수 있으니까. 나도 곧 이름이 사라진다. 영자만 사라진다면 답답한 항아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는 원래 붙박이였다. 오랜 시간을 누워만 있었다. 그런 나를 여러 사람이 찾아와 푸른 비닐에 싸서 차에 실었고, 염을 하고 태웠다. 작아진 나를 항아리에 담고 봉하더니 사물함 같은 공간에 넣고 이름표를 써 붙였다. 그러고는 불을 끄고 밖으로 나갔는데 내가 목청껏 불러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죽은 것이다.



나는 홀홀단신은 아니었다. 아내는 죽었지만 아들은 있었다. 그때 당시 나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곧 자식들이 찾아와 데려가겠구나. 그때 옆 칸에 목소리가 들렸다. 기대는 버리는 게 좋아, 우리는 연고가 없어서 온 거니까. 나는 코웃음을 치면서 답했다. 그럴 일 없을 거야.



난쟁이처럼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자식들인가 하고 귀를 기울였다. 그럼 바닥이 쓸리고 닦이는 소리가 났다. 죽고 나면 자유로워진다고 누가 그랬을까. 전부 거짓말이다. 그냥 세상에서 살짝 멀어질 뿐이다. 손을 뻗을 수는 있지만 움직일 수는 없다. 그나마 옆 칸에 자가 있었기에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움직일 수 있었던 시간에 일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야기들도 전부 떨어지자 자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천장까지 닿은 사물함이 가득 쌓여 방을 미로처럼 보이게 했다. 사물함에는 가지각색에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었고 모두 굳게 잠겨있었다. 그들은 생전 그랬던 것처럼 연을 만들고 싶지 않았는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름들과 날짜들을 하나씩 읽다가 질려버려 나는 그들처럼 입을 닫았다.



곧 비우는 날이죠? 그날은 두 사람이 찾아와 대화를 나눴다. 그래 전부 매립지로 갈 거야. 오랜만에 자가 입을 열었다. 곧 만날 수 있겠네. 자의 설명에 따르면 십 년 이상 이곳에 보관된 유골을 영락 동산에 따로 마련된 매립지에 뿌린다고 했다. 그때쯤이면 다들 이름을 잊는다고 했다. 자의 말처럼 나는 영이라는 이름 말고는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굳게 닫힌 문이 처음으로 열렸다. 우리는 품에 안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흰 장갑을 끼고 우리를 조심히 안아 영락 동산 꼭대기로 향했다. 그곳에는 묘비처럼 벽돌들이 세워져 있었고 의미 모를 숫자들이 적혀있었다. 고이 길 떠나소서. 그 말과 함께 봉했던 항아리가 열린다. 나는 뒤집혀 흙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자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누구였지. 다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곧 모두가 이곳으로 떨어질 것이다. 어쩌겠는가. 연이 없어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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