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골 마을, 해가 진 뒤에는 안개가 계곡을 가득 메우곤 했다. 사람들은 저녁이 되면 장산으로 난 오솔길을 절대 지나지 않았다.
“밤길엔 절대 뒤돌아보지 마라.”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들어온 경고가 귓가에 울렸다.
그날, 나는 술병을 손에 쥔 채 비틀거리며 그 길로 발을 들였다. 경고 따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발밑은 축축했고 풀잎 위로 달빛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바람 한 점 없었는데, 어디선가 굿소리 같은 구음이 흘러왔다.
“아아.. 이리 와라, 네 혼을 달래노라..”
목소리는 낮고도 높았다.
처음엔 멀리서 들리는 듯했으나, 점점 내 귓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굿판 소리였다. 그러나 이 산중에는 굿판을 벌일 무당이 없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려 했다. 그 순간, 안갯속에서 길쭉한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흰 털이 덮인 사람형 그림자. 처음에는 사람이 서 있는 듯 보였다.
손에서 술병이 미끄러졌다.
“쨍그랑!”
깨진 유리 조각이 달빛에 번뜩였다.
그림자는 한 발 한 발 다가오며 낮고 높은 굿소리를 냈다. 심장이 미친 듯 뛰고, 손끝이 얼어붙는 듯했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때, 귓가에 익숙한 음성이 스며들었다.
“여기 사람 있어.”
내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목소리가 안갯속 그림자 안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안개 너머로 나무가 검게 흔들리고, 축축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돌담은 무너져 있었고, 풀잎엔 이슬이 잔뜩 맺혀 있었다. 모든 것이 산골 마을의 고요와 쓸쓸함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그림자는 달빛에 비치며 점점 커졌다. 나는 숨을 죽이고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뒤에는 흰 털 속에 뒤섞인 인간의 형체가 서 있었다. 그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났다. 검은 구멍 같은 눈 속에서 달빛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그 시선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온몸이 얼어붙는 서늘함이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무당 흉내를 내며 사람을 꾀는 장산범이었다.
내 목소리는 이미 그림자 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여기 있어, 여기에 있어 여기에 있어 크크킼… 여기 사람 있어.”
숨이 끊어지는 순간, 내 그림자가 산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달빛만이 깨진 유리 조각과 축축한 풀잎 위를 차갑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낮고 높은 굿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내 목소리는 아직도 산속 어딘가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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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고민 끝에 올리는 글 | 마음에 안 드네요
↳ 현대적 전통 공포글은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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