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이진
BGM:
https://youtu.be/55qd4q-DBis?s…/ 에이티즈 홍중 - Lemon Tree(음원 X)
언젠가 넌 나에게 물었지. 저 푸른 하늘이 아름답지 않냐고.
난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어. 너가 귀찮았던 건 절대 아냐. 단지 인지를 하지 못했어. 위로 올라간 너의 옆모습에 넋이 나간 채 보고 있었거든.
너는 어떤 대답을 원했을까? 왜 그런 질문을 한 걸까? 고작 지나가는 하늘일 뿐인데. 아, 역시 나 자신을 되돌아보라며 한 질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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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가려진 일요일의 늦은 오후. 멍하니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사실 난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너가 사라진 나는 그저 레몬 껍데기일 뿐인가 봐. 영원히 꺼지지 않을 방해 금지 모드에 조용히 쌓여가는 문자들은 읽지 않을 거야. 어차피 괜찮냐는 뻔한 말들일 텐데 뭐. 괜찮냐고? 제길. 일주일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데. 괜찮아 보이나.
오늘은 밥을 먹기로 마음먹었는데, 보자마자 속이 울렁거려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어. 눈앞에 아른거리는 노랑색. 망할 레몬. 미운 레몬. 너가 생각나는 레몬.
놀랍도록 정돈되어 있는 집. 하나하나 다 너의 손길이 묻어나서 건들지도 못하고 있어. 정말 나쁜 자식. 너 없으면 나 멀쩡히 못 살 거 알면서. 왜 먼저 간 거야.
그날은 아직도 잊히지 않아. 오랜만에 참여했던 곡이 인기를 끌어 기분 좋게 차를 렌트하고 너와 드라이브를 나갔건만. 망할 레몬 나무로 둘러싸인 도로에 들어서 환하게 밖을 바라보던 너의 모습에 너무 아름다워 넋이 나갔었는데, 술 처먹은 아재와 들이박다니. 바보 같은 넌 조수석에 앉아있었지만 급하게 손을 뻗어 핸들을 돌렸어. 내가 바로 앞에서 봐서 알아. 멍청한 너의 판단이 널 죽였지.
너가 죽었다는 것도 모자라 죽게 내버려둔 사람도 나라니. 정작 바보는 나였을 지도 몰라. 바보같이 보고만 있었는데. 한순간에 죄인이 되어있었어. 우영이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 그랬지만, 알아. 너를 못 막은 나의 잘못이잖아.
레몬이 너무 싫어. 끔찍해. 붉게 물든 너와 나의 위로 레몬이 떨어지던 걸 아직도 기억해. 평온하게, 툭. 거지 같은 레몬은 너와 나의 상황도 모르나 봐. 씹어버리면 시큼한 맛이 입에 돌아 끔찍해. 짓눌러 버리면 손에 끈적한 즙이 묻어 끔찍해. 노란 레몬 나무는 정말 끔찍해. 지독히도 노란 너의 가디건을 닮았거든.
너도 참 이기적이다. 하나뿐인 애인 죄인 만들고 떠나다니. 남은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 바보. 멍청이.
이딴 노래 더는 듣기도 싫어. 뭣 모르고 왜 이런 걸 만들었을까. 그저 너의 사랑스러움을 담고 싶었을지도 몰라. 이젠 들을 때마다 너가 떠올라서 괴로워. 그런데 바보같이 다시 재생하는 내가 더 싫어. 너랑 오래 지내서 그런가 봐. 나까지 멍청하게 되다니. 사실 내가 원래 멍청이였을 지도.
외로워. 너무 외로워. 나에겐 너밖에 없는데. 나는 외로움에 익숙지 않아. 이럴 때면 너가 내 곁에 있었잖아. 난 널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돌아와 줘. 사랑한다고 해줘. 사랑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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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긴 잠에 들었어. 자각몽에 갇혔네. 오히려 좋을지도 몰라. 현실에서는 숨만 쉴 뿐 아무것도 못 하는데. 그렇게 살 바엔 이런 자각몽에라도 갇히면 좋겠다.
자욱한 안개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네. 그냥 앞으로만 계속 걸었어. 얼마나 걸었을까, 고개를 돌려보니 거지 같은 노란 레몬 나무. 너를 잃은 그 레몬 나무로 둘러싸인 도로. 어느새 안개는 없고 하늘은 푸르기만 해. 너가 아름답지 않냐 물었던 그 하늘. 바보 같은 하늘. 넌 왜 물었을까. 꼴 보기 싫은 저 하늘이 뭐가 좋다고.
무거운 발걸음을 더 옮겨. 이딴 곳을 벗어나고 싶었어. 근데 어쩌지. 넌 이곳에 머물러 있네. 여기서 대체 뭐하는 거야. 바보 같아. 왜 너를 죽인 레몬 나무에 평온하게 기대있어? 왜 나를 바라봐?
"홍중아, 무슨 일이야? 너가 나를 찾아오다니.."
"...."
"너 나 따라오려는 건 아니지? 내가 널 어떻게 살렸는데. 너무하다 너."
뭐? 너무한 건 너겠지. 나를 두고 먼저 갔는데. 바보같이 꿈에서만 나타나는데. 내가 널 얼마나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부드러운 얼굴이 대답 없이 혼자 말하기만 하다 찌푸려져. 저렇게 생생한데. 저렇게 멀쩡한데. 죽긴 개뿔. 이기적이다.
"왜.. 저딴 하늘이 예쁘다고 한 거야.."
"... 너가 생각났어. 항상 날 바라봐주는데, 나를 믿어주는 밝은 사람. 하늘이 널 닮았어. 외로워 보이는데, 누구보다 아름다워. 언제나 나를 밝혀줘."
"....."
"난 너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알아. 그래서 널 살렸어. 사랑해, 홍중아. 내 몫까지 잘 살다 와. 그럼 죽은 게 여한이 없겠다"
바보 같아. 너 없으면 하늘도 어둡다는 거 알면서. 멍청해. 미워.. 정말 나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Lemon : 레몬
Lemon : 바보, 멍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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