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31 00:17조회 23댓글 1이다음
Written by @이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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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국 - Euphoria













여느날처럼 평범하게 끝나리라 생각했던 하루였다.

한여름의 숨막히는 공기가 그 넓은 운동장을 꽉 메웠다. 햇빛이 미친 듯이 쨍쨍해서 운동장 모래 바닥에 귀를 대면 지글지글거리는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심지어는 하교하려는 학생들도 몰려들어서 운동장은 실외 불가마나 다름없었다.

학교 본관 입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뒤에서 크게 불렀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음에도 그 목소리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 유 별!
— 언제 나오나 한참 기다렸네.

내 5년지기 절친, 선예경. 서로의 눈만 바라봐도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사이였다.

— 아직도 그 명찰 주인 못 찾아줬어?

예경이가 내 왼쪽 손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현주현' 이라는 이름이 적힌 명찰이 있었다. 어제 등굣길에 주웠던 것이었다. 괜스레 명찰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었다. 노란 플라스틱 명찰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 응. 지금이라도 선도부한테 맡겨야 하나.
— 그러자. 명찰 색깔 보니까 2학년 선배가 주인인 것 같은데, 괜히 이상한 선배면 곤란해지니까.

예경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도부실에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 그 명찰, 내 건데.

툭,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이상한 감정이 별일 아니라는 듯 간략한 소리와 함께 내 심장에 낙하했다. 부서진 감정의 파편들이 충격으로 튀어올랐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둥둥 소리를 냈다. 이런 말 한번도 해본 적 없는데, 그러니까… 그 선배는 너무 내 스타일이었다.

그의 투명한 눈에 내가 비치는 것을 보았다. 선배와 나는 한동안 계속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일까. 툭, 툭, 툭. 이성이 머릿속에서 하나둘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입을 뗐다.

— 현주현이세요?
— 네.
— 아, 등굣길에 떨어져있길래.

서둘러 손에 있던 명찰을 내밀었다. 지금 드는 이 감정에 경계심이 들었다. 이제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저 선배를 계속 쳐다보고 있다가는 영원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선배가 명찰을 집어 들자마자 고개를 돌려 정문으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였다. 선배가 내 팔을 꽉 그러쥐고 있었으니까.

— 저기…

또다시 시선이 얽혔다. 어지러웠다. 더위를 먹어서, 그래서 지금 얼굴도 달아오르고 귀에서 이명도 들리는 걸까.

— 번호 좀 주세요.

그 순간, 나는 깨닫고야 말았다. 아, 망했다. 뭐가 망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 망해버렸다. 이제 내 삶은 이 여름의 전과 후로 나뉘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선배를 많이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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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다음입니다! 저를 기억하시는 분은 없겠지만.. 오랜만이에요 :) 글을 올리고 싶었으나 아이디어 고갈과 필력 부족 이슈로 한동안 눈팅만 했었는데요. 어찌저찌해서 근황 전하기 단편을 하나 들고 오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글 종종 올릴게요!

제 전작인 FLASH! 는 스토리 구상 중에 있어 무기한 연재 중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좋은 퀄리티로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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