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엔 철판을 깔고
그 애는 컵라면 뚜껑을 눌러 닫았다.
그 애의 심장소리가 유난히 컸다. 하루종일 누군가를 쫓아다녔던 것 처럼 숨을 깊게 내쉬었다.
나는 괜히 창문 쪽을 봤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도.
그와 헤어진 후, 나는 심야 배달 알바를 하러 갔다.
한 집, 한 집 배달을 끝낼 때 마다 핸드폰 배터리가 줄었다.
'오래돼서 그런가.. 폰도 바꿔야지..'
배달이 끝나고 시간만 확인하고 바로 핸드폰을 껐다.
[20○○. 1. 5 새벽 1시 23분]
뒷골목에서 담배 한 대를 피고 있을 때, 그 애가 어딘가로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을 봤다. 높고 오래된 빌라 앞에 멈춰 섰다. 그 애의 친구 집이었다, 그 애가 작년에 크게 다퉜던.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 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 애를 쫓아 몰래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 건물은 생각보다 더 습하고 꿉꿉한 공기가 눌러앉아 있었다. CCTV는 있었지만 작동을 안한지 오래된 것 같았다.
그 애가 2층으로 올라갔고, 나도 몰래 따라 올라갔다. 능숙하게 현관문 도어락을 누르곤,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곳은 틀림없는 그 친구의 집이었다. 혹시 몰라 핸드폰을 켠 찰나, 전원이 꺼졌다.
'하, 얘 대체 뭐하는 거야... 나도 지금 뭐하는 거냐. 집에나 가자..'
그와 동시에, 그 애가 집에서 나왔다. 그 애는 달라진 게 없었지만 무언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빠른 걸음으로, 그리고 조용히, 반대편 복도로 도망쳐갔다.
그 후, 나도 그냥저냥 집에 도착한 뒤 씻지도 않고 잠들었다.
나는 그 애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 알았고, 비슷한 시간을 보냈고, 같은 걸 좋아했다. 그래서 내가 그 때 갔던 빌라에서 시신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도 처음엔 연결하지 못했다. 연결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지난 5일, 서울 ○○구에서 20대 남성 김 모씨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피해자는...'
사건은 빠르게 흘러갔다. 앵커는 감정을 넣지 않은 목소리로 몇 문장을 읽었고, 화면에는 그 빌라가 나왔다. 뉴스는 그새 다른 소식으로 넘어갔다. 그 애는 아무렇지 않게 리모컨을 내려놓고 물을 마셨다. 삼키는 소리가 또렷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자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나는 말을 삼켰고 그 애는 말을 골랐다. 골라낸 말들은 언제나 안전했다. 회사 얘기, 날씨, 별 의미 없는 농담. 웃는 타이밍까지 완벽해서, 내가 괜히 이상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얼굴엔 철판을 깔고
그 애는 항상 그렇게 있었다.
경찰이 지목한 용의자에 그 애는 없었다. 완벽히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애는 떨지 않았다. 커피를 들고 있을 때도, 동전을 세고 있을 때도,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조차. 사람은 보통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쯤은 흔들리는데, 그 애는 아니었다. 마치 이미 다 겪고 연습한 사람처럼.
"요즘 별일 없지?"
그 애가 먼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이었다. 별일은 있었다. 바로 옆에.
그날 밤, 나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자꾸 한 장면만 반복됐다. 라면 뚜껑을 누르던 손, 아무렇지 않은 얼굴, 빌라 앞에서 멈췄던 발, 너무 평범한 하루. 평범함이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얼굴엔 철판을 깔고,
그 애는 농담을 했다. 사람들은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지 않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아서.
가끔 눈이 마주치면, 나는 제일 먼저 시선을 피했다. 혹시라도 거기서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볼까 봐. 혹시라도 그 애가, 내 떨리는 동공을 보고 의심의 표정을 지을까 봐. 사건의 전말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표정을.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건 비겁했지만, 동시에 유일한 생존 방법 같았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나도 차가운 시신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모른 척하는 관찰자, 숨죽여 바라보는 사람이 되는 것도 평생 답답할 것 같았다.
어느 날, 그 애가 말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아무것도 안 봐."
그 말이 나한테 한 건지, 혼잣말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그 순간, 나는 확실히 느꼈다. 그 애의 철판이 점점 얼굴에 붙어간다는 걸. 벗길 수 없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몇 번이나 멈춰 섰다. 돌아가서 말할까. 누군가에게 털어놓을까. 아니면 그냥 계속 모른 척할까. 선택지는 늘 있었지만,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엔 철판을 깔고,
그 애는 오늘도 평범한 하루를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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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감성으로 쓴 건 지 저도 잘 모르겠는.. 아무튼 오랜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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