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류(美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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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2 23:51조회 55댓글 1유키노텐시
미류(美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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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 시의 햇살은 농익은 살구색을 띠며 마을 어귀에 낮게 내려앉았습니다.

그 빛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너그럽게 받아내는 것은 마을의 수호신처럼 서 있는 거대한 버드나무였습니다.

하늘에서 초록색 비가 쏟아져 내린다면 아마 이런 모양일까요. 지면을 향해 길게 늘어진 버들가지들은 바람이 결을 따라 한 번 훑고 지나갈 때마다
'사아아—' 하고 낮은 바다 소리를 냈습니다.

그 소리는 무더운 여름날의 열기를 식혀주는 유일한 위로이자, 마을 전체를 감싸 안는 다정한 숨결 같았습니다.

나무 아래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 반질반질해진 평상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나뭇잎 사이를 통과한 햇살은 평상 위로 윤슬처럼 잘게 부서지며 내려앉았고, 그 위에서 치즈색 길고양이는 배를 드러낸 채 깊은 단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고양이의 콧등 위로 흔들리는 버들 그림자가 격자무늬를 그리며 일렁였습니다.


평상 한쪽 끝에 앉은 노인은 보리차 잔을 옆에 두고 느릿하게 부채질을 했습니다.
부채가 만들어내는 바람에는 나무의 시원한 나무 향과 갓 마른 빨래의 보송한 냄새가 섞여 있었습니다.

가끔 아이들이 뛰어와 늘어진 버들가지를 붙잡고 장난을 치면, 나무는 화를 내기는커녕 더 풍성한 그늘을 내어주며 아이들의 땀방울을 닦아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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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고도가 낮아질수록 나무의 그림자는 고샅길 깊숙이까지 길게 뻗어 나갔습니다.
연못가에 자리 잡은 이 나무의 뿌리는 땅속 깊은 곳에서 차가운 물을 길어 올렸고, 덕분에 그 근처의 공기는 늘 주변보다 한 뼘쯤 서늘했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평상에 내려놓고 머리 위를 뒤덮은 초록색 지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엉겨 붙었던 고단함이 개운하게 씻겨 내려가는 듯했습니다.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할 무렵, 나무는 제 몸속에 머물던 마지막 햇살 한 조각까지 모두 털어내고 어둠 속으로 조용히 침잠했습니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가장 먼저 빛을 머금고,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초록색 팔을 뻗어 자신들을 반겨줄 것이라는 사실을요.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버드나무는 그렇게 소리 없이 마을의 마음을 만져주고 있었습니다.



이미 우리를 떠나간 여름의 끝자락에서,
그 아름다움은 여전히 그곳에 굳건히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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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젖은 마음들을 말려주기 위해,
가장 찬란했던 초록의 기억을 붙잡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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