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다시 만난 시간

하린은 유리창을 통해 내다보는 도시의 불빛을 보며,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곱씹었다. 어느덧 30대 중반, 성공을 거머쥔 사업가로서의 삶은 예상보다 더 빠르게, 더 고독하게 지나가버린 느낌이었다. 부모는 오래전 이혼하고, 어머니는 그의 기억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하린은 그 사건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아버지 역시 자신에게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오늘은 다르다. 이 회사의 중요한 계약을 마친 후, 하린은 곧장 미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오늘은 집이 아닌, 예전 그 카페로 향했다. 오래전, 세진과 함께 자주 가던 그곳. 세진이 떠나고 난 뒤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

커피 한 잔을 주문한 하린은 창가 자리에 앉아 차가운 손끝으로 컵을 감쌌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하린은 의도치 않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본 순간, 시간은 잠시 멈춘 듯했다.

세진.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 짧은 금발 머리와 미소 짓는 눈빛은 그대로였다. 세진은 하린을 보고 잠시 멈칫하다가, 그 자리로 천천히 걸어왔다. 하린의 심장은 왜 이렇게 두근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멀리 있던 그 여자가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났다.

“하린… 오랜만이야.”

세진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러나 하린은 그 목소리 속에 어느 정도의 거리를 느꼈다. 그동안 그녀가 떠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 그 이유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세진은 다가와 앉더니 조용히 말했다.

“내가 떠난 이유, 아직 모르겠지?”

하린은 그 말을 듣고 움찔했다. 그 질문은 그가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 네가 떠난 이유를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

세진은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얼굴에 스쳤던 미소가 사라지며, 하린은 그 변화에 마음이 움찔했다.

“하린, 그때 나는… 너에게 해줄 말이 너무 많았어.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너에게 상처만 줄 거란 걸 알았어. 그래서 떠났어.”

하린은 세진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당시 떠났던 이유가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말에, 그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말 속에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나타난 거야? 왜 갑자기… 나를 다시 찾은 거지?”

하린의 목소리에는 서서히 의심이 섞여 들어갔다. 그는 세진의 눈을 들여다보며 다시 물었다. 세진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사실… 내가 너에게 말해야 할 게 있어. 내가 떠난 이유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만은 아니었어. 너와 네 아버지가 얽힌, 너무 복잡한 문제들이 있었거든.”

하린은 순간 당황했다. 그동안 자신은 세진이 단순히 사랑의 감정 때문에 떠났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세진의 말은 그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가 있음을 암시했다.

“너와 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이야?”

하린은 세진의 말에 당황하며 다시 물었다. 세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떨구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야. 하지만 내가 말하지 않으면 너는 절대로 알 수 없을 거야.”

하린은 세진의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무엇인가가 그를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면,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때, 하린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하린은 잠시 화면을 봤다. 정우의 이름이 떠 있었다. 한때 가까운 친구였던 정우와의 연락은 오랜만이었다. 하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하린, 중요한 일이야. 지금 당장 나와 만나야 해.”

정우의 목소리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하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세진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잠깐만. 나 가봐야겠다.”

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아. 중요한 일이 있으면 가야지. 하지만… 내 얘기, 나중에 꼭 들어줘.”

하린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난 후, 세진은 그 자리에 남아 한동안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