幻覺迷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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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1 16:50조회 99댓글 4
슬픔을 먹고 무거워진 소원들이 레몬 짜이듯 쏟아지는 어느 날, 덜컹대는 자동차 안에서 창외를 바라보는 하얀 깃털로 정성을 들여 꾸민 듯한 두 날개 달린 □가 있었다.

□라면 보통 축복을 내려주고 소원을 이루어주는 입장으로 많이 묘사되는 세계였지만, 그 두 날개 달린 생명체는 夢 한 방울도 담기지 않은 공허한 심해로 창외 멀리 어딘가를 좇고 있었다.

□를 바라본 그 일순에 몽朦하게 변한 전면 유리창을 물방울 위에서 춤추는 와이퍼로 싹 밀었다. 蒙하고도 明한, 애매한 밝기의 축축한 하늘을 바라봤다.

금해 秋 갑작스레 쏟아진 때늦은 비로 인해 지상의 기온은 10월의 중순을 달리고 있었음에도 한자릿수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기상 이후의 원인을 바라보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도로 위를 처음 달려보기에 그러는 것인가–□가 탄 자동차의 바로 옆 라인에서 그 존재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던 나는 제아무리 □라 할지라도 비가 오는 날에는 눅눅해지는 건가? 따위의 이런저런 망상을 이어나갔을 뿐이다.

마치 다른 세계에 진입한 듯한 □의 이질적인 감각은 내 心 깊은 곳에 잠들어있던 미망설을 다시 일깨워줄 양분이 되었다. 실재하지 않는 존재를 마주하고 가장 처음 느꼈던 감각은 두려움보다는 無였다. 정확히 정정하자면 □를 보았으나 구원받을 거란 예감 따위 내겐 사치일 정도로 무감각했다.

내가 환각을 보았던 것일까, 방금까지 사이드미러로 연하게 보이던 □의 두 날개는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 미망설을 잠시 떠오르게 했던 그 두 날개는 애석하게도 白日夢 처럼 사라졌다.

자동차를 주차시킨 뒤 밖으로 빠져나와 아직 물기가 묻지 않은 우산을 펼쳤다. 검은색 1인용 우산을 쓰고 비가 이미 적셨는데도 계속 물을 퍼붓고 있는 환각 위를 걸으며 끝없이 미련한 두 날개 달린 생각에 깊이 잠수했다.

———

미망설, 일체의 실재 세계가 환각 미망(幻覺迷妄)에 불과하다는 설을 사람들은 미망설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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