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조용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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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1 20:42조회 32댓글 0onke
서현이에 대한 소문은 암암리에 돌고 있었다.
 
그야 그럴 법도 하다. 돌연히 학교를 나오지 않게 되었나 했는데 그 사유라는 게 전학이나 퇴학도 아니고 휴학이라니까.
 
대학생도 아니고, 학업을 잠시 쉰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기에 우리는 아직 어렸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설명을 들었다는 얘기를 나는 율이에게서 처음으로 전해 들었다.
 
율이는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현이와는 결이 다른 느낌으로 큼직한 눈망울에 콧대가 오뚝하게 서 있었다. 가늘고 작은 입술은 새빨갛게 물들어서 하얀 피부에도 묘한 생기를 부여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TV에 나오는 연예인 같다고 생각했다.
 
율이와는 올해부터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 정연와는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다는 모양으로, 정연이를 통해 알게 되어서 어느샌가 친하게 되었다.
 
연예인처럼 예쁘장한 그 아이는 그 외모 덕에 인기가 좋았다.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말하는 것도 거침이 없어서 사내아이들과도 곧잘 어울리곤 했다. 반에서도 인기가 좋았고, 다른 반에도 아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서현이가 소속되어 있던 학급으로부터 묘한 소문이 돌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나와 서현이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율이나 정연이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는 정도는 네가 알아야 할 것 같다면서 이야기해주었다.
 
누군가가 말하길, 언젠가 서현이가 키가 크고 예쁜 얼굴을 한 정장 차림의 여자와 함께 차에 타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여자는 다분히 사무적인 분위기였고 서현이는 늘 그렇듯 어딘가 불편해하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한 기업의 재벌이 숨겨둔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재벌은 서현이가 고작 학교나 다니면서 일반적인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자라나는 게 마뜩잖았다. 그래서 자기가 데리고 지내면서 자체적으로 교육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외국의 유명한 연예인들의 자녀들이 종종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서현이네 아주머니는 찬성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서현이에게 있어서 좋은 일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현이를 보내주기로 했다. 전학이나 퇴학이 아니라 휴학으로 처리된 이유는, 서현이의 수준이 재벌의 성에 차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돌려보낼 수 있도록 퇴로를 마련해둔 것이지 않을까――
 
그런 얘기가 돌았다는 듯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율이도 내가 불쾌해하는 내색을 눈치챘는지 단숨에 손사래를 치면서 화제를 바꿨다. 당연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런 소문에 대해 조금도 믿지 않거나, 혹은 비웃는 세력이 과반이라는 듯했다. 애초에 소문 자체도 어쩌면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정도의 이야기였다는 모양이다.
 
서현이가 유명한 재벌의 숨겨둔 자식이라고? 병신처럼 구석에 처박혀서 우물쭈물하기나 하는 녀석이다. 만약 정말로 그 녀석이 재벌의 숨겨둔 자식이라고 해도, 그런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게 할 정도의 재벌이라면 금방 녀석에게 실망하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건 그것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 소문이었다. 서현이는 그런 식으로 얕잡아봐도 괜찮은 아이가 아니었다.
 
선천적인 질환으로 활동적이지 못하고 그런 탓에 자신감이 부족하게 자라서 사교성이 없는 아이가 되었지만, 독서를 즐기는 만큼 아는 것도 많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였다.
 
클래식과 재즈를 즐기는 멋진 취향을 가졌다. 언제나 나를 배려해주고 곁에 머물러주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런 식으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녀석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아이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율이는 또다시 내 눈치를 살피다가, 이어서 다른 소문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어쩌면 서현이 말이야, 플라톤에 타게 되는 걸지도 몰라.”
 
나는 순간 당황해서, 턱을 괸 자세에서 반사적으로 시선만을 들어서 율이에게로 향했다. 율이는 뭐랄까, 새나 쥐들에게도 알려져선 안 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남몰래 전하는 것처럼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로 짐짓 진중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정연이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플라톤? 철학자 말이야?”
 
“뭐래. 저기 재개발 지역 근처에서 공사 중인 로봇 말이야. 괴수랑 싸우는데 쓴다는 그거. 외국인들도 되게 많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여태 이름도 몰랐어?”
 
율이는 핀잔이라도 주는 것처럼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지만 정연이는 그 정도야 모를 수도 있지 괜히 그런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며 토라진 내색으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한 발치 떨어진 자리에서 구경하며 웃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런 소문이 돌고 있는 걸까. 서현이가 떠들어댔을 리는 없다. 한 달이나 고민해서 겨우 내게 꺼내놓은 얘기였다.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별로 친하지도 않은 급우들에게 털어놓았을 리가 없다.
 
“있지, 율아. 자세히 좀 얘기해줄래?”
 
나는 재촉했다. 율이는 순간 나를 향해 시선을 주고서, 얘가 웬일로 흥미를 보이나 하는 얼굴로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허리를 숙여서 고개를 내게로 가까이 한 채 속삭이듯 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야. 다른 반의 누가 그러는데, 몇 주 전에 서현이가 교무실에서 담임이랑 상담을 하고 있었대. 그런데 그 옆에 다른 누가 봤다던 예쁘장한 정장 차림의 여자가 서 있었다는 거야. 그리고 얘기하는 걸 우연히 옆에서 들었는데――”
 
그때, 플라톤 3호기가 건조될 때까지――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는 것이다. 즉, 여자는 플라톤 3호기 건설현장의 관계자라는 뜻이다.
 
공사현장의 관계자 가운데 정장 차림을 하고 있을 만한 인물이라면 인부로서 관계되어 있을 리는 없다. 여자는 현장의 책임자거나 혹은 플라톤 3호기가 연관된 모종의 다른 기관의 관계자일 것이다.
 
그런 여자와 함께 있어야 할 이유. 서현이는 여자와 함께 준비되어 있던 차량에 올라탔던 일이 있었다. 교무실에서 담임과 상담하는 자리에도 여자가 동행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떠오르는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서현이가 플라톤 3호기의 파일럿으로 낙점되었고, 탑승을 위한 훈련을 위해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학교에 적을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휴학이라는 형식으로 학교를 떠나게 된 것이다.
 
――라는 얘기였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단편적인 정보로 그만큼이나 정확하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니, 탐정이나 경찰에 소질이 있을지도 모른다.
 
“예지 너는 서현이랑 친했잖아. 혹시 뭐 들은 거 없어?”
 
율이는 물었다. 특별히 어떤 의도를 갖고서 물은 것은 아니었을 테다. 단순히 궁금했기 때문에 물었을 뿐이다. 호기심 이외의 어떤 의도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율이는 그런 아이라고 나는 내심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기밀이나 보안 따위의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모른다. 애초에 관련해서 들은 게 없었다. 단지 서현이에 대해, 그 애가 없는 자리에서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떠들어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몰라, 나도 들은 거 없어.”
 
다분히 퉁명스러운 어조가 되었지만 모른 척한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모른 척한 것도 아니었다. 정연이는 눈치껏 율이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율이도 그제야 미안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서 구부리고 있던 허리를 폈다.
 
나야말로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애들이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래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그렇게 해주고 있다. 나를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와중에 율이가 말했다. 어딘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내게 이야기해주기에는 어딘가 떨떠름한 무언가가 있음을 나는 직감했다. 그러나 율이는 말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내가 알아야 한다고, 몰라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런 내용이었다.
 
“서현이, 죽을지도 모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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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현이가 있던 학급으로 향했다. 등 뒤에서 정연이와 율이가 달라붙어서 말리고 들었지만 전부 뿌리치면서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주도했던 인물을 찾아서 따지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교실의 앞문을 힘껏 밀어서 열어젖혔다. 쾅 하는 소리가 났다. 웅성거리던 교실이 단숨에 끓어오르던 냄비 안으로 찬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가라앉았다. 삽시간에 이목이 앞문으로, 내가 서 있던 그 자리로 집중되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한서현, 죽을 거라고 했던 새끼가 누구야?”
 
교실 안으로부터 조금씩 숙덕거리는 소리가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교실의 뒤편에 있던 남학생들 가운데에, 속된 말로 조금 놀게 생긴 덩치 하나가 일어서서 말했다. 말하면서 내게로 다가왔다.
 
“뭐냐, 너는?”
 
이윽고 내 앞에 섰다. 나는 여자치고도 키가 큰 편이었지만 그런 나보다도 이마 하나만큼은 더 컸다. 내려다보는 시선에도 나는 주눅들지 않았다. 감정이 치밀어서 그런 사사로운 데에 신경을 쓸 여지가 없었다.
 
“너야? 네가 그딴 개 같은 소리를 했어?”
“뭐라는 거야, 갑자기 쳐들어와서.”
 
괜스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서 머리를 긁적이며 짜증스레 한숨을 쉬듯 읊조렸다. 나는 참을 수가 없어져서 소리쳤다.
 
“너냐고 묻잖아, 이 씨발아!”
 
덩치에 맞지 않게 기세에 밀려나는 것처럼 남학생은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부터 다른 남학생 하나가 다가왔다. 키는 먼저 다가왔단 남학생과 비슷한 정도. 단순히 덩치만 큰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근육이 바로잡힌 멋스러운 체형이었다.
 
“내 얘기 하냐?”
“너야? 네가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했어?”
 
나는 물었다. 남학생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고서 말했다.
 
“뭐, 한서현 그 찐따새끼가 괴수랑 싸우러 갔다는 거? 아니면 싸우다 뒤질 거라는 거? 나 너 알아. 한서현이 맨날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년이잖아. 넌 그런 헛소문을 진짜로 믿냐?”
 
“말 돌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그 싸우다 뒤질 거라는 헛소리, 네가 지껄여댄 거냐고 묻잖아, 병신아.”
 
“허 참, 그래. 내가 그랬다. 솔직히 그 새끼가 로봇을 타고 세상을 지켜준다는 것도 같잖은 소리기는 한데 설득력은 있으니까. 만약 사실이라면 그쪽에서도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그런 찐따 같은 새끼 하나 데려다가 지구를 지켜달라고? 뭐, 다 뒤질 일있냐?”
 
“말 다했어?”
 
“다 안 했어. 솔직히 그렇잖아. 그 새끼가 저 로봇 타고 나가서 싸운다는 게 진짜면 말이야, 직전에 도망치지나 않으면 다행일 일이지. 진짜로 타고 나갔다가 병신처럼 아무것도 못 하고 울기나 하지 않겠냐? 그러다 뒤지는 거지. 뻔하잖아.”
 
“그런 뜻이 아니잖아, 병신아. 맥락도 제대로 못 짚어? 보나 마나 성적도 바닥이나 깔아주게 생겼네. 당장 취소하란 뜻이잖아, 그 말.”
 
나는 화가 났다. 얼굴도 모르는 이런 인간이 서현이를, 처음으로 뭔가를 지켜줄 수 있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용기를 내었던 그 애를 그런 식으로 깎아내리는 게 화가 났다.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함부로 떠들어대면서, 능력이 되지 않는 줄 알면서도 나가서 싸우기로 결심한 그 애를 멸시하는 그 태도에 화가 치밀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만약 이대로 취소한다면―― 사과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실언을 했다는 정도로만 얘기해준다면 나도 나름대로 참아보려는 노력 정도는 해볼 의향이 있었다.
 
나도 서현이에게 그런 식으로 실수를 했으니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토해내고 말았으니까 이해해줄 수 있었다. 사람이라면 가끔 그럴 수도 있다고 다독이면서 이 자리를 떠나줄 의향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늘 내 바람처럼 나아가질 않는다.
 
서현이가 결국 내 곁을 떠났던 것처럼, 언제나 내 바람과는 정반대로만 나아간다.
 
“뭐냐, 고작 헛소문 하나로 되게 물고 늘어지네? 진짜 뭐 있냐? 아 씨, 진짜면 이거 진짜로 큰일 났는데? 한서현 그 새끼 때문에 다 뒤지면 어떡하냐, 진짜? 뭐, 예비로 쓸만한 인력이라도 구해뒀나?”
 
“――취소할 마음 없다는 뜻이지?”
 
사과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호기심에 말이 헛나왔다고, 딱 그 정도의 면피성 발언 한마디면 될 일이었다. 나는 딱 그 정도만 바랐다. 애초에 사과 같은 걸 할 인격이었으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보나 마나 뻔하다. 평소에 서현이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었는지,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아이의 교실에서 어떤 식으로 대접을 받고 있었는지, 눈앞의 이 녀석이 서현이를 어떤 식으로 대해왔는지.
 
그걸 생각하니 이제는 참아줄 이유가 없었다.
 
나는 분명 기회를 주었다.
그걸 걷어찬 건 저쪽이었다.
 
“그럼 됐어. 취소할 생각 없으면 관둬.”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뒤로 돌았다. 등을 보인 채로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갔다. 그리고 적당히 거리가 벌어졌을 때, 다시 뒤로 돌아서 나아갔다.
 
교실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문턱은 높지 않았다. 그걸 넘어서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가서서.
정연이와 율이가 말릴 새도 없이――

――그 뺀질대는 얼굴에, 냅다 주먹을 박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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