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2 18:13•조회 40•댓글 0•5eo1z
시간은 예정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텔레비전을 켜놓곤 미뤄놓았던 집안일 몇 가지를 해냈고, 미하엘은 아마 아직 연락이 없는 것을 보아 미팅하는 중인 것 같았다.
시계는 네 시 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그리도 빨리 지나가다니. 생각보다 집안일이 재밌었나 싶었다.
* 아담!
순간 현관문을 열어젖힌 미하엘과 눈이 마주쳤다. 푸른 눈이 오후의 석양 빛을 받아 더욱 찰랑였다.
내가 생각한 미하엘의 도착 시간은 다섯 시였는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탓에 내 스스로도 적잖이 당황함을 느꼈다.
* 미하엘? 어찌 이리 빨리...
청부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미팅이란 그런 것이었다. 표적을 잡고,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해하면 좋겠는지 견적을 보고, 액수를 협의하는 것. 그리고 그런 대화는 보통 패닉룸에서 이루어졌다.
애초에 액수 협의는 기본으로 서너 시간은 걸리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돈은 살인에 들이는 시간과 비례했다. 더욱 그 미팅을 진지하게 받아들일수록 액수도 올라가는, 그런 피라미드 같은 형식이었으니.
* 생각보다 견적이 빨리 끝났어.
미하엘은 미팅에서 받아온 서류 뭉치들을 식탁에 던지듯 놓았다. 그리곤 의자 하나에 기대어 앉아 눕듯이 고개를 뒤로 뉘였다.
* 의뢰인이 얼마나 진상이었는지. 액수도 자꾸 기본 금액보다 깎는 바람에 스트레스만 엄청 받았다니까. 그럴거면 청부를 뭣하러 신청한건지. 돈도 없는 거렁뱅이 주제에...
나는 미하엘의 입에 작은 캔디 하나를 집어넣었다. 그것은 우리의 수신호와 비슷했다. 그 의미로는, [ 시끄러우니까 욕하지 마. ] 나, [ 조용히 하고 결과나 말해. ] 가 있었다.
* 그래, 그래... 알았어, 아담. 그래서, 이메일 답장은 했어? 범비 정부 말야.
깜빡 잊고 있었다. 밀린 집안일을 하다보니 고작 그런 이메일 하나 쯤은 잊어버리기 쉽상이었다.
내가 난처한 웃음을 짓자 미하엘은 뜻을 알아챘는지 곧장 나의 노트북을 열어 이메일 목록을 확인했다.
* [ 움틈 분들께 알립니다. from 범비 ] ... 라고 보냈네.
아, 저기서 말하는 움틈은 나와 미하엘이 일하는 크루의 크루명이다. Untm. 사실 고작 나와 미하엘의 본명을 따 만든 단순한 코드네임이지만.
* 내용 확인해봐.
나는 미하엘에게 적극적으로 읽어보기를 권유했다. 아무리 내가 제대로 전달했어도, 미하엘에게 내용을 전달하며 놓친 내용 하나는 있기 마련이니까.
미하엘은 긴장하며 마우스로 그 이메일 제목을 클릭했다. 이메일엔 짧은 단문의, 사실 통보라고도 볼 수 있는 단락이 타이핑 되어 있었다.
* [움틈 분들을 범비 정부로 초청합니다. 이곳은 세이핀로의 에이번가, 번지수는 172 - 2이며 밑 큐알코드를 프린트해 정부 내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긍정적 고려 바랍니다. ]
세이핀로와 에이번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죽을 만큼 듣던 이름들이었다.
* 속이 거북해졌어. 이거, 그냥 닥치고 일단 오라는 거잖아.
미하엘은 그렇게 말하며 토하는 시늉을 해댔다. 물론 나도 역겨운 것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부 놈들도, 살인이 합법 되기 전까진 우리에게 청부를 넣던 더러운 핏덩이들인데.
~
* 와, 역시 아담. 요리 실력이 나날이 늘어가는 것 같아!
미하엘은 나의 요리를 먹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입맛이 까다로운 미하엘을 자꾸 배려하려 같은 음식만 몇 년을 요리한 덕분일까.
* 서신은 어떻게 보낼까?
아, 그 상황에서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싶었다. 괜히 잘 먹는 미하엘을 눈 앞에 두고 그런 말을 꺼내다니.
* 음... 아까 내게 말했던대로 사흘에서 보름 뒤 즈음 찾아가겠다고 보내자. 그게 제일 안정적이고 편리하겠어.
나는 고갤 끄덕였고, 미하엘도 곧 웃음을 지으며 다시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
거기서 서신을 안전히 보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아담, 아담! 눈 떠! 휘말리면 안돼!
날 업고 뛰는 미하엘. 그리고 • • •
* 당장 잡아, 저 쥐새끼들! 살인 합법화를 만든 주범들이다!
움틈을 죽이려는 시장 녀석.
* 미하엘...
나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