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에선 고래가 날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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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5 16:36조회 40댓글 0세리아
유설은 고작 다섯 살 되던 해에 에프 그룹으로 내려왔다. 에프 그룹에서 유설은 료가 담당했다. 유설이 처음으로 에프 그룹으로 내려왔을 때 료는 집앞 쓰레기장에서 썩은 빵이나 질겅거리던 중이었다. 세상은 저출산이다 인구수가 떨어지고 있다고들 난리인데 에프 그룹에서는 어디선가 항상 사람이 내려온다. 유설은 무려 에이 그룹 출신이었다.


A → F
사유: 선천적 심장 기형


동봉된 의사 소견서를 읽어보니 유설의 심장병은 생각보다 심각한 듯싶었다. 일상생활 못 하는 건 당연하고 오래 걷는 것도 제대로 못 할 거라고. 솔직히 어려운 단어가 너무 많아서 제대로 이해는 못 했는데, 시한부란 거 그거 하난 알아들었다. 언제까지 살아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유설 같은 중증 심장 기형이면 이십 년 사는 것도 기적이랬다. 개도 아니고 고작 이십 년도 못 사는 건 뭐야. 에이 그룹같은 곳이랑은 다르게 에프 그룹은 하루에도 몇백 구씩 새 시체가 생긴다. 그냥 쓰레기장에 갖다 버릴까 고민하다 시체 썩은 내가 나는 건 싫어서 료는 유설을 키우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설이 눈을 떴다. 제 앞에 료가 있었다.


- 너 심장병이라면서. 길어야 스물을 못 넘길 거야.

유설은 그 말 듣고도 고개만 갸웃거렸다.

- 하긴 너같은 어린애가 뭘 알겠냐.

자기도 어리면서 료는 그렇게 말했다.


유설은 태어나고부터 줄곧 병원에서만 살았어서 아픈 게 당연한 건줄 알았다. 너 심장병 있어, 그 말만 골백 번은 들어서 이젠 심장이란 단어만 들려도 그게 제 이름인 줄 알고 뒤를 돌아봤다. 오늘도 심장병 하는 소리에 유설은 두 눈 크게 뜨고 료를 바라봤다. 료는 유설의 코앞에 와 있었다.


유설은 심장이 아픈 대신 감각이 좋았는데, 특히 소리를 정말 잘 들었다.


쿵쿵. 쿵쿵. 머리에서 료의 심장 소리가 울렸다.

유설은 료의 심장 소리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유설이 평생 들었던 심장 소리라곤 제 것밖에 없어서 그랬다.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곧 끊어질 것 같은 심장으로 살아가는 줄 알았다. 그래서, 유설은 자기가 아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료는 자길 바라보는 유설의 측은한 눈빛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그렇게 봐. 하고 묻자 유설은 아니에요. 하고 대답했다. 료는 유설이 생각보다 말을 잘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만난 것치고 유설은 지나치게 태연했다. 료는 왜 본인이 더 긴장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기 같은 범죄를 저질러서 에이 그룹에서 단번에 에프 그룹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마치 죽기라도 한 것처럼 괴로워했다. 진짜 자살하는 사람도 흔치 않았다. 에이 그룹을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오다가다 전광판으로 본 뉴스에서 에이 그룹은 마치 꿈에서만 그리던 태평성대처럼 보여서, 료는 자기라도 콱 자살해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설은, 얼굴을 찡그리곤 두 손으로 코를 막았다.


- 여기 더러운 냄새가 나요.


에프 그룹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났다. 집에서 냄새가 난다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어서, 료는 뭘 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허둥지둥 손부채질만 했다. 냄새가 더 심하게 났지만 유설은 그냥 가만히 바람만 맞고 있었다. 시원해요. 추워요. 그렇게 불만만 늘어놓고는.


흩어지는 기억이 있었다. 유설은 얼마 전 꾸었던 환상을 떠올렸다.


에이 그룹에는 수면기가 있다. 수면기를 이용하면 고작 두 시간만 자고도 열 시간 잔 것처럼 말끔한 정신으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에이 그룹의 모든 사람이 반쯤 의무적으로 수면기를 사용했고 에프 그룹으로 내려와 아홉 시간이나 줄창 자 버린 유설은.


- 잠을 잤는데 고래가 나는 걸 봤어요.


처음으로 꿈이란 걸 꿨다.









내 꿈에선 고래가 날아 #1
Write by Se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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