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 겨울 사이. 서늘해진 공기가 유리처럼 맑고, 마음은 그보다 더 투명해지는 시기. 햇살은 아직 따듯한 척을 하지만, 그 온기 속엔 이미 이별의 냄새가 섞여 있다. 사람들은 차가워진 마음을 두꺼운 코트로 감싸고, 단풍잎이 깔린 거리는 점점 느려진다.
모든 게 잠시 멈춰 있는 듯한 저녁.
그날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바람은 더 서늘하게 불었고, 낙엽은 길 위에서 오래된 노래처럼 바스락거렸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이상하게 좋았다. 말로 꺼내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것 같았고, 그래서 더 조용했다.
길모퉁이를 돌고 골목의 풍경이 달라질 때마다, 겨울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가로등 아래서 하얗게 흩어지는 숨결,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그 모든 게 계절의 경계선에 서 있는 듯했다.
나는 네 옆에서 천천히 걸음을 맞췄다. 눈이 내리기 직전의 하늘은 묘하게 흐렸고, 그 흐린 빛 속에서 네 눈동자가 잠시 반짝였다. 마치 ‘지금’을 오래 붙잡고 싶다는 듯이.
그때 나는 느꼈다. 이 계절은 끝이 아니라, 끝과 시작이 만나는 곳이라는 걸.
가을의 끝과 겨울의 시작, 따뜻함이 식어가는 자리와 차가움이 태어나는 자리.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가 있었다.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계절의 사이 같은 존재로.
@ne0n. 오랜만이죵... 더 자주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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