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퍽질퍽청춘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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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1 20:51조회 149댓글 8유건
후끈후끈, 드디어 여름이 날 죽이려고 작정했나 싶을 정도의 무더위 속에, 하복 혼용 기간이 시작되었다. 말이 하복 혼용이지, 쪄 죽기 싫으면 사복을 입으라는 뜻이다. 선도부들이 존나 개꿀 빠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점점 더 습해지고 숨이 막힌다. 질퍽하게.
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

우리의 청유 고등학교가 우리에게 하복이라며 던져준 건, 뻑뻑한 반소매 셔츠 한 장이었다. 나는 작년에도 그랬듯 집에 500개쯤 쌓아둔 흰 티를 입으려 했다. 하지만 우리의 낭만 과도기 개새끼는,

- 올해는 하복 여신이 될 거야.

씨발, 개학 여신도 아니고 -개강 여신이다.- 하복 여신은 뭔가, 애초에 얼굴이 개새끼인데 하복만 입는다고 여신이 되냐? 추구미가 하복 입은 푸들이라면 모를까.

- 그러니까 너도 하복에 넥타이까지 하고 와.

이런 미친, 개새끼가 주인한테 명령을 한다. 라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그 무엇으로도 이 작은 개새끼를 이기지 못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힘은 내가 더 세다.-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저 치와와가 이빨을 내미는 걸 보게 된다면 덤비겠다는 생각 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아침이 밝았고, 나는 개새끼와 늘 만나는 골목에서 핸드폰으로 설윤 외모 근황, 송하영 대학 축제 같은 영상들을 죽죽 넘겨 보고 있었다. 아 이놈의 하복. 돈을 아끼려고 했는지 싸구려 소재의 하복은 뻣뻣하고 불편했다.

그래, 저기 뛰어오는 개새끼도 같은 생각을··· 씨발 뭐야? 개새끼가 위에 입고 있는 건 아디다스 반소매 였다. 뭐지? 나 엿먹이려고 저러나? 싶었지만 개새끼 말을 잘 듣는 착한 주인인 나는 억지로 웃으며 개새끼에게 물었다.

- 미친년아, 왜 하복 안 입고 오는데.

- 아 쏘리ㅋㅋㅋ 개꽉껴ㅋㅋㅋㅋㅋ 못입어.

쟤가 뭐라는 거지? 싶다가도 금세 이해했다. 작년에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하복 여신이 되겠다고 자기 몸을 압박하는 수준으로 하복을 줄여 놨으니 안 맞을 만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한가지였다.

- 개새끼가 아니라 돼지였네?


질퍽질퍽청춘


아야야야야··· 아직도 아까 처맞은 대가리가 아리다. 돼지가 힘도 세면 반칙 아닌가? 결국 나만 존나 불편한 하복 챙겨 입은 꼴이 되었다. 투닥거리며 -일방적으로 발렸다.- 들어간 교실에서 개새끼의 이름과 폭탄의 이름이 함께 연호되었다. 나는 불안해져 개새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저 씨발···.

비상. 비상이다. 치와와가 이빨을 내밀었다. 이대로 저 도파민에 미친 짐승들에게 달려 들었다가는 개새끼나 쟤들 중 누구 머리가 다 뜯겨 대머리가 되어야 끝날 것이다. 미친놈들아, 군대 일찍 가고 싶냐? 하고 뜯어 말린 뒤 개새끼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개새끼가 빡친 이유는 쟤들이 아닌 듯 했다. 그럼 뭐길래···

- 야!!!!!

폭탄이 존나 빡친 표정을 하고 있다가 비듬을 휘날리며 벌떡 일어났다. 그 이후 한 말이 더 레전드였다.

- 쟤가 나한테 어장 쳤다고!!!!

뭐래, 저게. 지한테 어장을 치다가는 눈알이 빠져서 자동 군면제··· 아 개새끼는 군대를 안가지. 아무튼 그날부로 앞에 뵈는 게 없어 막대기로 바닥을 치며 다녀야 한다. 세상 누가 그런 수고로움을 감수하냐? 머리에 폭탄 맞으면서 뇌에도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의심이 되었다.

극평화주의자인 나는 둘이 야차를 뜰까, 심히 걱정이 되었다. 나는 폭탄 옆에 가서 비듬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 옆에 있는 개새끼를 말리는 걸 선택했다. 일단 개새끼를 진정시키려면 다정하고, 친절하고, 위협적이지 않게···

- 야 개새끼, 진정해.

- 뭐씨발니는이와중에개새끼이러네.
- 그딴호칭은누구대가리에서나온거지?


다정? 친절은 개뿔. 역시 개새끼를 상대하려면 역지사지가 답이다.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역으로 지랄해줘라! 나는 누군가 생각한 이 멋진 말을 개새끼를 통해 실현해 보려고 한다.

- 와 인성 봐···.
- 지나가던 치와와도 엿 박고 가겠다.

- 뭐래, 못생긴 두더지 닮은 게.

뭐? 뭐?? 못생긴 두더지? 이게 미쳤나. 내가 아무리 개새끼를 짐승에 매일 비유한다고 하지만 너는 안되지. 나같은 경우 대한민국 남고딩의 내로남불 정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우리는 흑표범, 카피바라, 돼지 같은 온갖 동물을 언급 하며 열 띤 토론을 이어갔다.

- 야, 쉬는 시간에 다시 한다. 생각 잘해 와.

- 너나 열심히 해.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덜덜거렸다. 뻣뻣한 하복과 몸 사이는 이미 몰아치는 더위에 충분히 질퍽해졌다. 개같은 여름의 끝이 어딜까. 덥다는 한탄은 언제쯤 멎을까.


https://curious.quizby.me/ugun…

^ 퇴고 없어요 장편이에요 댓글 써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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