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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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5 20:18조회 72댓글 4천진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처음부터 나는 낙원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마냥 조금 아프고 깨지 않는 꿈일 줄 알았습니다. 덥고 습하고 기분 나쁜 여름이 삼백육십오 일 지속될 줄 알았습니다. 아무 이변도 없이 그럴 줄 알았습니다. 갑작스럽게, 내가 도망친 곳은 참 잔인했습니다.



죽어가는 青春, 죽어가는 별, 죽어가는 波濤.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나는 사랑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나도 죽어가는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波濤에 떠밀려 가거든 소녀만은 죽지 말라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우주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서울은 혼잡하기만 한 서울이었습니다.

우주 는 죽어보지않 으면갈 수없 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바다에 간 그 시점부터 쭉 죽어있었습니다.



봄을 사랑하고 여름을 시기해서 미안합니다. 아슬히 떠나간 봄을 이생의 마지막까지 그리워할 것을 압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다음 생에 부서지는 波濤의 포말로서 태어난다면 여름을 심장으로 여기며 부서지겠습니다.

···.

다음 생이 있습니까? 나는 또다시 꺼져가는 별로 태어나기를 상상했습니다. 죽어가는 별을 그때는 사랑해 주시렵니까? 다음 생에 波濤의 포말로써 태어나지 못한다면 여름을 사랑하지 않아도 됩니까?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 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것이 죽어간다면 무엇을 사랑해야 합니까? 이 우주 모두를 사랑하기에 내 심장이 그리 넓지 않습니다.



소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다시 만날 수 있습니까. 波濤와 달과 하늘과 윤슬에 소리쳐도 답이 없습니다. 당연한 일인 걸 압니다. 내 모든 장기를 토해낼 정도로 울었고 모든 것을 흘려보내기 위해 휩쓸렸습니다. 나는 빈껍데기가 되어 태평양을 표류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도망쳤습니다. 당신이 소녀를 데려간 이후로 바다 따위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습니다. 바다에서 있었던 모든 순간을 게워 내야만 했습니다. 소녀와 나,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라는 표현을 써도 되렵니까. 소녀와 나를 한 존재로 묶기에는 소녀가 너무 비참해지는 듯합니다. 문득 내 심장 한 부분이 뭉개졌습니다. 소녀는 참으로 안타까운 존재입니다. 따가운 여름 모래알 위에 눕지 않았다면, 나에게 말을 붙여오지 않았다면, 그 바다에 오지 않았다면, 나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만에 하나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그 마을에 가지 않았다면 소녀는 죽지 않았을 텐데. 우주는 애꿎은 별 하나 죽이는 것을 잘합니다.



波濤에 휩쓸릴 때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합니까? 나는 습관처럼 봄과 서울, 끄트머리에는 소녀를 떠올리려 했습니다. 신은 장난을 좋아한다고 하더랬죠. 믿지도 않던 신을 원망하긴 처음이었습니다. 소녀에게 휩쓸리는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감은 늘 틀리지만 나는 나를 너무 모질게 믿고 있었나 봅니다. 내가 소녀를 떠올리지 않았다면 나는 지워질 수 있는 존재였을 겁니까? 소녀는 그날 바다를 걷지 않았을 겁니까? 아, 아닙니다. 처음부터 잘못됐습니다. 나는 서울에서 죽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서울에서 죽어야 했던 거군요. 사랑하지 않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건 끔찍이 싫지만 모두는 대개 그렇게 죽어버립니다.



여름은 너무 덥지만 내가 만약 신경을 곤두세우고선 떨고 있다면 누군가 나를 안아주십시오. 무더운 태양에 흐른 땀이 뒤엉키고 나는 호흡이 가빠질 수도 있겠지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찮은 것은 본디 연약한 법입니다. 나는 항상 만약을 가정하고 일어날 최악의 상황을 떠올립니다. 내가 이십구 년을 살며 깨달은 단 한 가지는 기쁨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알아두십시오.

나는 봄에게 영생을 명했습니다.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중, 「서시」를 일부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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