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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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1 21:10조회 273댓글 23익애
가을 볕 아래, 창밖으로 무심하게 흩어지는 붉은 나뭇잎들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한 잎, 또 한 잎, 바람 한 점에도 여지없이 가지를 떠나는 그 연약한 조각들이 마치 나의 오래된 신뢰 같았다. 견고하다 믿었던 우리의 약속들이 이토록 허망하고 추락하는 모습에 차가운 물웅덩이에 빠진 듯 목울대가 서늘하게 조여왔다. 결국 나를 이토록 속절없이 무너뜨리는 건 내 삶의 한 축이었던 너였다. 가장 소중했던 존재가 드리운 그림자는 이토록 깊고 길었다.

밤의 장막이 깊어질수록 내면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침묵 속에서 증폭되는 너와의 파편적인 기억들이 가시 돋친 덩굴처럼 심장을 휘감았다. 이제는 정말 이 지긋지긋한 갈등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네가 드리운 모든 그림자를 내 삶에서 완전히 걷어내고 싶었다. 더 이상 이 처참한 관계의 끈을 붙잡고 있을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만 맴도는, 이 거지 같은 반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이 혐오스러웠다. 그 모든 파멸의 시작점은 언제나처럼 너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언행이었다. 이제는 더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 깊숙이 박힌 네 목소리는 한때는 따스한 위로였으나 지금은 스며드는 독이었다.

네가 감히 내게 이런 상처를 줄 수 있었다는 사실은,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구축된 모든 것을 허물어뜨렸다. 네가 뱉었던 모든 따스한 격려와 영원할 거라 믿었던 약속들은 결국 나의 시야를 가리는 얄팍한 안대였던 걸까. 너라는 존재에 대한 견고했던 나의 믿음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찢어지고 처참하게 발 밑에서 밟히는 파편으로 변했다. 그 끔찍한 진실 앞에서 나는 날것 그대로의 광기에 잠식당하는 것을 느꼈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함께 나눈 우리의 추억과 미래를 그렸던 희망, 그리고 미래를 그렸던 희망도 모든 것이 싫었다. 텅 빈 껍데기만 남은 나 자신을 발견했을 떄 그저 네가 미웠다. 심연의 바닥까지 증오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미움과 절규의 감정 끝에는 언제나 같은 인정이 뒤따랐다. 너는 내 청춘의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모든 이유이자 세상 그 자체였다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을. 이토록 증오하면서도, 너는 나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 달라고, 존재 자체를 지워달라고 절규하듯 외치는 내면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애처롭게 너를 갈구하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마음과 함께 네가 미웠고 여전히 미운 마음으로 너를 용서해달라는 간절함이 뒤섞였다. 이 끝없이 소용돌이 치는 혼돈 속에서 나의 모든 것이 무릎 꿇고 허물어졌다.

혼자서 이토록 깊은 우정을 갈망했고, 이 관계의 끝을 고독하게 예상하는 듯한 감정이 나를 휩쓸었다. 분명 다시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온몸에 멍이 들고 너덜너덜해질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너라는 친구를 필요로 하는 스스로가 한심한 바보처럼 느껴졌다. 멈출 수 없는 욕망처럼, 너의 존재는 여전히 내 안에 단단히 뿌리박혀 있었다.

넌 때로는 눈부시게 빛나 주변 모든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내게도 세상 가장 멋진 친구였고, 누구보다 나를 이해해줄 거라 믿었던 유일한 존재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나 차가운 사람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내 심장까지 얼어붙는 듯한 차가움을 느꼈다. 닿을 수 없는 너의 본질, 그럼에도 나는 너를 원했고 여전히 함께 나눈 그 소중했던 시간들을 붙잡고 싶었다. 과거의 그림자에 매달려 현재의 고통을 부정하려 했다.

이 지긋지긋한 감정의 굴레는 끝없이 제자리만 맴돌았다. 도대체 왜 나는 매번 똑같은 절망의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걸까. 이쯤 되면 정말 스스로가 한심한 바보가 아닌가 싶었다. 어떤 발버둥을 쳐도, 어떤 방향으로 도망쳐 보아도 이 격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분명 내 의지로 움직이는 마음인데 왜 스스로의 마음조차 통제할 수 없는지 그 좌절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나는 또다시 공허한 혼잣말을 반복했다. 메아리 없는 외침만이 차가운 벽에 부딪혀 부서졌다. 너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침묵은 언제나 너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였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절박한 바람이 샘솟았다. 다시 예전의 순수했던 그때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새파랗게 펼쳐진 가을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나의 고통과 아무런 상관없이 눈부셨다. 눈부신 햇살이 세상 모든 것을 환히 비췄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빛 속에서 흐르는 나의 눈물은 더욱 선명하게 반짝였다. 어째서 너여야만 했는지, 왜 하필 모든 순수한 청춘을 너에게 걸었는지 해답 없는 질문들이 끝없이 맴돌았다. 이 끈을 놓는 순간, 나의 일부도 함께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깊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함께 지켜왔던 우리의 약속들이 이토록 잔인하게 빛바래는 이 아픔을 왜 나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는지 고통스러웠다. 내 청춘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함께 채웠던 너, 이제는 나를 갉아먹는 독이 됐다. 이렇게 망가질 것을 알면서도 왜 자꾸 너라는 존재가 우리의 엉킨 시간이 내 삶에 절실해지는 걸까.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깊은 심연이었다.

넌 눈부시게 아름다운 존재였지만 나는 너의 차가움과 무관심에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었다. 나의 존재는 점점 더 희미해졌다.

끝내달라는 절규는 차마 목구멍을 넘어오지 못했다. 이 아득한 고통의 심연에서 나를 꺼내 줄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차라리 너의 입에서 우리의 모든 순간이 진정한 우정이 아니었다고, 한 여름밤의 짧은 꿈이었다고 말해주기를 갈망했다. 더는 과거에 매달려 비참하게 매달리지 않도록 나에게 마지막 작별을 건네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너의 입에서 나오는 그 잔인한 말들이, 어쩌면 나를 구원할 유일한 열쇠일지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를 품었다.

혼자서만 이 깊은 우정을 갈망했고 홀로 이별을 감당해야 하는 서글픔, 모든 것을 갉아먹는 고통을 알면서도 너와의 유대감을 끊어낼 수 없는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아름다웠고 끝없이 차가웠던 너. 너라는 흔들리는 궤도 위에서, 내 가장 소중했던 청춘의 한 페이지는 그렇게 찢겨 나가고 있었다.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를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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