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3 19:18•조회 39•댓글 0•kxng
-내 여름을 빼앗았잖아-
by kxng
"진아야,나랑 뜨개질하러 가자"
"아냐...아냐...내가 미안해..."
진아의 꿈결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진아를 괴롭혔다.
"류진아,뭐해. 나랑 같이 가자니까? 류진아!!!!."
잠에서 깼다.
1년에 한 번. 그날에만 진아를 똑같은 악몽을 꾼다.
365일 중 그 꿈의 하루가 오늘이였다.
"언제부턴가...우리는 잘못됐어."
진아가 혼자 중얼거렸다.
-탁.탁.-
"거기 류진아,똑바로 안앉아?!"
선생님의 말에 어린진아는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다.
"진짜 류진아. 널 어떻게 하면 좋니?"
선생님은 진아를 문제아라고 생각했다.
진아는 항상 학교에서 10분 쯤은 늦게 등교했다.
"야. 쟤야. 류진아"
"아 그 찐따?"
사실 진아가 문제아가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존재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엄마 배고파요..."
"기다려보렴...언젠가는..."
학교 가는 길 모퉁이에는 작은 창고가 있었다.
그 창고에서 겨우 겨우 사는 모녀가 있었는데
진아는 그 둘을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진아는 결국 자신의 도시락을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제 점심인데 드릴께요. 이따가 학교 끝나면 제가 여기로 다시 올 테니
먹고 남은 그릇은 저 다시 주세요."
그렇게 매일매일 진아는 도시락을 먹지 않고 창고에 사는 두 모녀에게 주었다.
"항상 고맙다. 진아야,참. 이번에 아줌마가 저기 시장에서 일하게 되어서.
우리 딸래미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어. 다 네 덕이다"
"아니에요.아주머니가 열심히 일하신 덕이죠. 아무튼 저 가볼께요."
진아는 창고에 살았던 그 아주머니와 딸이 계속 창고에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다음 날 학교 가는 길에 보았을 때 창고는 거짓말처럼 텅텅 비어있었다.
"류진아. 또 지각이니? 넌 이제 안되겠다. 교탁 앞으로 와."
진아의 담임 선생님은 회초리로 진아의 종아리를 석 번 때렸다.
"죄송합니다."
진아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전학생이 왔으면 이 쯤만 하지. 어서 자리로 들어가."
반 아이들은 키득대며 진아를 비웃었다.
"안녕. 나는 최유이라고해"
전학생은 댕기머리를 하고 있었고.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예쁘장하게 생겼다.
"헐 진짜 이쁘다."
"친해지고 싶다."
여자아이들은 자세를 똑바로고치고 유이를 바라보면서
남자아이들은 앞머리를 뒤로 쓸며
전학생에게 잘보이려고 행동했다.
"유이는...어...류진아 옆에...아니다. 내가 자리를 만들어줄께"
담임 선생님은 빈자리가 진아 옆자리밖에 없자 망설였다.
유이가 진아랑 친해지면 진아처럼 문제아가 될까 걱정했던 것이다.
"아. 아니에요. 저는 진아 옆에 앉고 싶어요."
선생님은 하는 수 없이 유이를 진아 옆에 앉혔다.
"유이야, 이따가 같이 뜨개질하자"
반장인 다영이 유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 미안...나는 뜨개실을 아직 못 샀어. 그리고 나 진아랑 할 얘기가 좀 많아서...
나중에 꼭 같이 하자."
유이가 말했다.
"아...근데 류진아 쟤랑 너무 친해지지마. 우리반 공식 문제아거든."
다영이 얄밉게 말했다.
"아냐."
유이는 단칼에 거절하곤 진아를 바라보았다.
"전학생. 너 왜 자꾸 날 보는 거야."
진아는 무뚝뚝하게 유이에게 말했다.
"너 진짜 나 기억못해?"
유이가 물었다.
생각해보니 어디서 본 것도 같은 얼굴이였다.
하지만 진아는 유이를 무시했다.
다음날 학교에는 유이를 비난하는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유이는 알아채지 못했다.
진아는 결국 나서기로 했다.
"야. 박다영. 너지?"
"뭐야. 류진아?"
다영의 뻔뻔한 태도에 진아는 화가 났다.
"몰라서 묻니? 나 따시킨거. 그리고 유이에 대한 헛소문 퍼뜨린거."
진아가 따졌다.
"허. 어이없네. 야 류진아. 너 지금 나 모함하지?"
다영이 시치미를 떼어도 진아는 그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진아는 다영의 팔을 잡았다.
"야. 박다영. 너 유이한테 사과해. 그리고 그 소문을 진짜 믿는 애들한테도 사과해.
그러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할 지 두고 봐."
진아는 다영을 노려보았다.
"어....싫어. 내가 문제아 말을 왜 듣니?"
다영은 넘을때로 선을 넘기 시작했다.
"박다영. 선넘네? 즐즐하지 말고. 빨리 해. 너 같은게 왜 반장인지 내가 다 까발려줄테니까."
진아는 크게 마음을 먹었다.
"허.해봐 어디."
"야. 얘들아 잘들어. 박다영의 어머니께서 무슨 짓을 했는 지 똑똑히 들으라고. 박다영 쟤.
반장된 거. 뇌물 때문이잖아. 더 웃긴건. 쟤 맨날 100점 맞지? 쟤네 할아버지가 우리학교
교장인 건 다 알잖아? 쟤네 할아버지가 시험지 늘 미리 주잖아. 이거 범죄야. 정신나간 다영아."
진아는 결국 지난 4년간 초등학교에 다니며 알아낸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털어놓았다.
.
진아는 다영의 할아버지의 고발로 인해 먼 학교로 강제전학가게 되었다.
전학사유는 '그냥'이였다.
다영을 화나게 한 죄였다.
진아가 전학가고 나서. 유이는 매우 힘든 학교생활을 해야만했다.
"최유이 쟤 진짜 이상해. 쟤 예전에 여기 모퉁이 창고에서 살았대."
"완전 떠돌이 거지였네"
사실이였다.
유이는 매일아침에 진아의 도시락을 먹으며 살았고
겨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유이는 진아와 친해지고 싶었다.
진아의 은혜를 갚고 싶었다.
날이 갈수록 괴롭힘은 심해졌다.
결국 유이는 진아에게 마지막 소원을 빌러 간다.
"류진아. 나랑 뜨개질 하러 가자"
갑작스럽게 찾아온 유이에 진아는 깜짝 놀랐다.
"어...어? 미...미안...유이야.."
진아는 유이에게 미안했다.
그냥 모든 것이 미안했다
더 이상 자신떄문에 상처를 주기 싫었다.
진아는 유이가 아직도 괴롭힘을 받고 있는 것을 알았다
아직까지 진아는 한 가지 사실을 몰랐다.
창고소녀가 유이였다는 것을.
유이는 결국 세상을 떠나기로 했다.
진아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은혜를 갚고 싶었지만
단지 그것을 못해 한이 남았을 뿐.
유이가 마음의 병에 걸려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던 날은...
1991년. 8월 8일.
진아가 12살 때였다.
34년의 한을 악몽으로 키우게 되었다.
진아는 유이가 죽어서야 알게 되었다.
창고 소녀가 유이였다는 것을.
그 사실을 잊을 때 즈음.
그 꿈을 꾸게 되었다.
진아의 여름은 고통과 죄책감으로 가득 차있었고.
그것은 진아의 상처로 돌아왔다.
"최유이...은혜 안 갚아도 됐어. 내 여름을 빼앗아갔잖아.
그게 좀 힘드네. 보고 싶어."
by kx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