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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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3 23:35•조회 88•댓글 0•소야
https://curious.quizby.me/Soyy…



어느 날부터인가 상공에 거대한 반구체가 생겼다. 한달에 고작 한두 번 날이 좋을 때에만 그 꼭대기를 어렴풋이 엿볼 수 있었으며 그조차도 크기를 짐작할 수 없었다. 구체에 반사되어 비친 빛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작은 태양이 내려온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망했다. 인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초대형 태양 폭풍이 발생했다. 위성이 전멸하고부터 오존층이 부숴지기까지 고작 삼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인류의 반 이상이 한 달도 되지 않아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고작 추정치일 뿐인 이유는 전력망이 붕괴되어 제대로 된 소식을 들을 수 없어서였다. 그 모든 것이 온전한 멸종의 전조였으나 모든 사람이 희망을 잃진 않았다.


하늘의 특징은 희망 운운하기. 앞길 안 보인다 싶은 상황에서도 속없이 원이를 북돋았다. 야아 세상이 망하고도 우리 일 년이나 더 살았다. 곧 죽는단 말을 참 긍정적이게도 하네. 아마 하늘은 죽어서 업적을 남기고 원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겠지. 그렇다면 다른 생존자한테 잡아먹히지 않게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태양풍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어줍잖은 음식들은 다 털렸다. 하나 남은 거라곤 언제 녹을지 모를 고물 자동차 한 대가 끝. 삼 개월간 틀어박혀 썩어 갔던 집구석에서 죽는 건 극구 사양이어서 원이는 자동차 몰았다. 창에 잔뜩 올려 놓은 썬팅이 검어서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이 날씨에 보행자 있을 리가 없고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그 흔한 자동차 하나마저 보이지가 않았다. 그 사이 자동차는 낡은 초등학교 옆을 지나갔다. 어린이 보호 구역 따윈 좆 까고 시속 백 키로. 원이는 룸미러로 뒷자리를 힐끗였다. 하늘이 알 듯 모를 듯한 눈을 하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되게 뜨거울 텐데. 말마따나 순식간에 눈이 새빨개진 하늘이 블라인드 내리고선 태양빛 피해 가운데 자리로 밍기적 밍기적 기어가기 시작했다. 햇빛을 이기지 못한 자동차 에어컨이 달달거리면서 최고 단계로 찬 바람을 뿜고 있었다. 차체의 온도는 계속계속 올라가고.


"원이야 울 첨 만난 서울이나 갈까."


원이가 하늘을 처음 만난 건 멸망 셋째 날에 먹을 거 다 털린 대형마트 지하 일 층에서였다. 운 좋게 집에서 쉬던 사람들은 준비도 없이 멸망을 마주했다. 길거리에 눌어붙은 시체가 즐비하고 비둘기 차에 밟혀 죽은 것처럼 알아볼 수 없는 살덩이가 조각조각 흩어져 있었다. 차에 밟힌다고 부숴지지 않는 뼛조각들은 아무렇게나 바닥을 굴러다녔다. 첫째 날은 멸망의 적응. 둘째 날부터 용감한 사람들은 거리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 정도 못 되는 원이랑 바람은 사람들이 다 훑고 지나간 마트에서 구석진 곳에 있는 음식 훔치다가 딱 마주쳤다. 바람은 식량 줍던 것도 잊고 원이 보면서 소리쳤다. 너 운전할 줄 알지! 자동차도 없으면서 지난번에 따 뒀던 운전면허증이 생각 난 원이는 떨떠름하게 고갤 끄덕였다.


"나 자동차 있다. 운전 좀 해줘."


하늘은 새벽밤 태양풍 피해 마트로 걸어오는 동안 길거리에서 삼 중 추돌 사고가 일어난 자동차들을 발견했다. 제일 덜 고장난 것 같아 보이는 자동차에서 피 철철 흘린 운전자를 밖에 얌전히 뉘여 두고 차키를 훔쳤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아직 해결 못한 문제는 하늘이 운전 못 한단 거. 식량, 중요하고. 태양 피할 집, 중요한데. 그 둘 뿐이면 언젠간 고립되고 만다. 하늘은 원이에게 그 논리만 거진 삼십 분동안 펼쳤다. 팔랑귀 원이는 왠지 설득되는 기분. 얼빠진 얼굴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어쩌면 이웃이었을지도 모를 원이와 하늘의 동행이 시작된 순간은 고작 세상이 멸망한 다음.


차 타고 며칠동안 식량만 챙겼다. 나중엔 서점 가서 한국지리 책 훔쳤다. 맨 뒷 페이지 부록 칸에 달려 있는 에이쓰리 용지 사이즈의 한국 지도. 그 쪽만 잘라서 지도로 썼다. 국도로만 달렸으니 길을 잃지 않은 것도 용했다. 일 자로 쭉 내려오면서 지나치지 않은 편의점이 없을 정도로 죄 털었다. 그걸로도 계속 먹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루 종일 운전만 해도 음식 하나 찾지 못하는 날이 점점 늘어만 갔다. 종래에는 남는 식량이라도 불려 보고자 주인 없는 집으로 들어가서 과일이나 채소를 길렀다. 자랄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식량은 점점 줄어만 갔다.


근데도 죽으란 법은 없는지.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저 멀리서부터 보이는 거대한 반구체. 태양만큼 밝은 구체를 바라보다가 도저히 앞을 보고 운전할 수 없어서 원이는 갓길에 차를 댔다. 저게 뭐야. 우리 살 수 있나. 하늘은 또 희망 운운하고. 팔랑귀 원이는 또 그 말에 귀를 팔랑이고.


저녁이 되면 알 수 있겠지. 해가 지고 난 뒤에야 다시 운전대를 잡은 하늘은 해가 뜨기 전까지 돔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





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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