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 어연 1년 ]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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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7 00:15조회 82댓글 95eo1z
이튿날 밤, 나는 방에서 그이의 영정사진을 없앴다. 그리곤 아궁이에서 불을 때워 그대로 영정사진을 아궁이 안으로 집어넣었다. 주방에선 탄내가 진동하다 못해 유해가스로 숨이 막혀 졸릴 때 즈음 주방을 나올 수 있었다. 내 눈에서 나는 것이 그저 탄내로 인한 신체 반응인지, 그이를 향한 깊은 애절함인지 헷갈리게 되었다.

* 어무니... 뭘 태웠슴니까? 집 안까지 구린내가 퍼졌슴다...

순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사랑채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는 순이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잘 자라, 하며 사랑채 안 문을 열어주기만 하였다. 순이가 알아야 할 의무는 없었다. 나만 안고 있으면 전부 잊혀질 일이었다. 어제 말해준 일로 순이는 걱정 포화 상태였다.

* 순이야, 이따 어미가 없으면 장 밖으로 나오거라.

순이는 잠에 빠질 듯 말 듯한 얼굴로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이참에 장에 가서 순이와 맛있는 것을 먹을 예정이었다. 순이가 좋아하는 냉이도 사고, 나물도 먹고.

~

공허함에 못 이겨 눈물로 허송세월을 보낸 지 어언 1년. 그이가 날 이름으로 불러주던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리워 다시 한 번만 보고파. 그대의 입술에 나의 사랑을 포갤 때면 없던 악도 물러나 평온해졌었는데... 이제 그 입술은 커녕 온기조차 음미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순이만을 바라본 채로, 천찬히 나는 우울에 잠식되어갔다.

* 파 한 단 사쇼! 오늘만 오천 냥이오!

* 아가씨, 우리 쑥국 맛 좀 봐, 엉?

내가 자는 순이를 두고 나온 곳은 바로 인근 장. 사실 시끄러운 곳에 오면 조금이나마 그이가 잊혀질까 수없 고민했건만, 정작 잊혀지는 것은 그이가 아니라 그이의 얼굴이었다. 한순간의 화로 지운 그이의 영정사진은 마음 속에서 큰 파도를 만들어 심장 일렁이게 만들었다. 점점 그이의 얼굴이 잊혀갔다. 누군가 지우개로 지우는 것 마냥, 점점 눈부터 사라져갔다.

그이가 내게 맞추었던 그 입술마저 기억에서 희미해져갈 때 즈음. 나는 장으로 뛰쳐나온 순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짚신도 제대로 신지 못 히고 구겨서 안으로 말아넣어 신은 채로 날 마주한 순이는 그대로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 순이야!

순이의 뒤를 그대로 껴안자 만져지는 머리카락은 가시나들 만큼이나 길어 있었다. 이것 하나 제대로 만져주지 못한 어미가 미안하다, 잘못했다. 남들 다 하는 갓 하나 못 사준 내 자신이 실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고작 상투 하나 못 틀어주면서 장은 무슨 장. 나는 곧장 순이의 손을 잡아끌고 냉이산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어, 어매! 여긴 냉이산 아닙니까!

냉이산. 냉이산을 생각하니 또 눈시울이 불거졌다. 그이와 함께 맞잡던 손의 온기가 아직까지 내 손톱 끝까지 남아있는 듯한데, 같이 밟았던 냉이산의 길조차도 달달 외우고 다녔는데. 도무지 조금은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 어무니... 괜찮슴미까...?

순이의 순박한 눈이 나를 더 죗값에 옭아매게 했다. 나는 순이의 손을 맞잡았다. 순이의 머릿카락도 조금 매무새 해주었다.

* 순이야...

그이를 보내주려면 이 방법 밖엔 없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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