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 ] 항상 있던 그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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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3 18:13조회 32댓글 0이진
W.이진










" 와아.. 출근 어떡하지 "

오늘따라 우박이 쏟아져 내렸다.
근데 난 출근을 하네? 이런.


무거운 몸을 끌고 비 오는 날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멋이랍시고 입은 바지 끝엔 물이 흠뻑 젖어버렸다.












' 오늘도 있겠지? '

몇달, 아니 훨씬 전부터 내가 앉는 자리 건너편엔 한 소녀가 앉았다.
그 아이는 프리랜서인 것 같았다. 출근길 지하철에선 볼 수 없는 맑은 눈으로 노트북을 들고 내 맞은 편에 앉아있었으니. 항상 눈썹을 찌푸리고 노트북 화면만 쳐다본다. 이젠 저 소녀를 보는 것이 내 출근길의 유일한 장점이다.


비 오는 날이라 그런지 밝은 노랑 가디건을 입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죄 없는 노트북을 째려본다.
그러다 천천히, 고갤 들어 날 빤히 바라봤다.

..날? 왜??
난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끔 저럴 때마다 난 아무 일도 없던 척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이 거리가 나에겐 딱 좋게 느껴졌다.
여기서 더 가까워지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릴까봐,
두려웠다.















.

뿌연 구름이 걷히고 오랜만에 햇빛이 내리쬐는 오늘, 내 기분은 최고다.
그 소녀가 생각났다. 하늘처럼 맑은 눈의 소녀가 보고 싶어 가벼운 발을 앞세워 지하철 역으로 갔다.




어라?
그 소녀는 없었다.
내가 다른 칸에 있나 생각이 들어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없었다. 애꿎은 자리만 뺐겼다. 그렇게 적막한 출근길을 보냈다.














.

몇날 며칠이 지나도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내 건너편엔 덩치 큰 아주머니 뿐이었다.
혹시 아픈 걸까? 그냥 바쁜 걸까? 아님 내가 마음에 걸린 걸까?
온갖 생각들로 몇주가 지났다.


항상 앉던 그 자리에 앉아 오늘도 기다렸지만 그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몇 정거장을 더 거친 뒤 노란 가디건을 입은 여자가 들어왔다.
소녀의 가디건이었다. 그냥 같은 제품이라고 넘길지 몰라도 난 알 수 있었다. 소녀의 가디건이란 걸.









" 저기.. 항상 이 시간대에 앉아있던 여자애 보고 계셨던 분이죠..? "

누굴까? 누군데 소녀의 옷을 입고 나에게 그녀에 대해 묻는 것일까. 지인이라면 소녀의 행방을 물어보면 되기에 난 말을 이어갔다.


" 아.. 네. 어떻게 아셨죠? 아니 일단 그 여자애,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
" .. 전 그 아이 언니에요. 죽기 전에 남긴 유언이 자신을 계속 쳐다보던 남자애가 자신 묘에 오면 좋겠다고 해서.. 죄송해요. 갑자기 찾아와서 죽었다는 말씀 드리고 "

충격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죽었다니.. 내 짝사랑의 비극적인 결말이었다.



















.

오늘은 소녀와의 마지막 날처럼 비가 하늘을 덮은 날이다. 난 소녀를 닮은 노란 코스모스를 들고 그녀의 묘에 찾아갔다.
어느새 코스모스는 비에 젖어 축 쳐졌다.


나도 참 바보 같다.
왜 이름 번호 하나 물어보지도 않고 바라만 봤을까.
그녀도 나에 대해 관심이 있었을까?





" 하늘에선 나 같은 어리석은 놈 만나지 말고.. 다가와주는 용기 있는 놈 만나. 많이 좋아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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